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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소년의 눈에 비친 애틋한 벨파스트의 기억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3.31 14:00
수정 2022.03.31 10:03

영화 ‘벨파스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2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거장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인용했다. 작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표현해낼 때 가장 진정한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영화 ‘덩케르크’ ‘테넷’ ‘나일강의 죽음’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배우 겸 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유년 시절 고향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겪은 종교 내전의 상흔을 영화 ‘벨파스트’에 담았다. 그가 연출한 많은 영화 중에서 자신의 가장 내밀한 기억을 담은 작품으로 이번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1969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가족과 함께 사는 9살 소년 버디(주드 힐 분)는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집 앞의 거리에서 뛰어논다. 그런데 갑자기 천주교를 탄압할 목적으로 결성된 폭도들이 들이닥치고 평화로웠던 도시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된다. 마을은 점점 험악해지고 있지만 버디는 평범한 일상을 유지한다. 좋아하는 친구 옆에 앉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할아버지(시아라 힌즈 분), 할머니(주디 덴치 분)와 그날의 일과를 털어놓으며 가족 간의 정을 쌓는다. 하지만 목수 일을 하던 아버지(제이미 도넌 분)가 더 이상 일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가족은 북아일랜드에 남을지 영국으로 떠날지를 갈등한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공감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벨파스트’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등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던 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살고 있는 버디는 감독 자신이다. ‘치티 치티 뱅뱅’을 따라 부르고 ‘공룡 100만년’을 볼 때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공룡들의 싸움을 바라본다. 버디에게 영화는 꿈의 세계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영화 관람하며 쌓았던 무수한 경험은 그가 영화인이 되기 위한 자양분이었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벨파스트라는 문화와 역사적 공간의 서사를 담고 있으면서 또한 버디의 성장 서사를 그리고 있다.


폭력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음을 전한다. 영화는 어린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에 집중하지만, 그렇다고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9살 버디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 벨파스트와 북아일랜드에 담긴 과거의 아픔이 함께 새겨져 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둘러싼 잔류파와 독립파의 갈등은 결국 종교적 분열로 이어졌고 양측의 대립은 갈등으로 확대되며 무력 충돌로 치닫는다. 어린아이 눈에 비친 당시의 기억은 흑백의 이미지로 남았다. 폭도들을 마주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버디의 시선에 따라 움직이며 슬로우 모션과 사운드 페이드 아웃되는 것은 내전의 상흔은 잘 드러낸 대목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을 보낸 벨파스트에 대한 애정 또한 엿보인다.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아일랜드를 떠나지 않았다면 더 일찍 작가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노래와 시를 사랑하고 이야기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문화,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아일랜드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케이피리 오나발피, 제이미 도넌, 시아라 힌즈 등 북아일랜드 출신의 배우들을 기용함으로써 각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왔다. 북아일랜드의 전설적인 뮤지션 밴 모리슨도 각본에 대한 애정을 느껴 영화의 음악을 맡았다.


폭력은 인간이 인간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윌 스미스는 아내의 상처를 농담거리로 삼았다는 이유로 코미디언 크리스 록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많은 민간인들과 아이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영화 ‘벨파스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상호간에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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