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아이들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혹함
입력 2022.03.17 13:53
수정 2022.03.17 13:53
넷플릭스 영화 ‘폭격’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냉전시대가 종식된 후 30여 년 동안 유지되어오던 평화가 최근 깨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에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전쟁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의미 있는 영화가 공개됐다. 영화 ‘폭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덴마크에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45년 자전거에 계란을 싣고 집으로 가던 헨리는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하던 자동차가 폭격당해 처참히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그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헨리는 코펜하겐의 이모 집으로 가게 되고, 사촌 리모아와 함께 수녀들이 운영하는 카톨릭 학교를 다니며 점차 차도를 보인다. 에바 또한 길거리에서 학살당하는 사람을 목격하게 되면서 상처를 받는다. 한편 덴마크의 레지스탕스는 덴마크 수도에 있는 게슈타포 본부 건물인 셀후를 폭격해 달라고 요청하자 영국 공군은 실수로 아이들로 가득한 카톨릭 학교가 폭격하게 된다.
영화는 순수한 아이들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전한다.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과 상처를 받는 건 바로 아이들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을 만든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은 고통과 아픔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 전쟁 트라우마로 상징되는 헨리와 에바는 어른들에게서는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다. 오히려 같은 또래인 사촌 리모아가 하늘이 보이는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돕고 에바에게 빵을 먹을 수 있도록 돕는다. 천진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행동과 달리 어른들은 폭력적이다. 헨리를 치료하는 의사는 ‘사내처럼 말해’하며 소리치고 에바의 아버지는 ‘식사를 거르면 굶어 죽는다’며 윽박지른다. 영화는 어른들이 저지른 폭력과 전쟁에 노출된 아이들을 통해 전쟁의 잔혹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전쟁은 군인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독일 장교 차량을 폭격한 영국 공군 조종사는 방금 폭격한 자동차가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하려던 민간인의 차량이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빠진다. 민간인을 독일군으로 오인 사살한 일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아 또 다른 민간인 지역에서 건물 한 곳에만 폭탄을 투여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공군 조종사는 지난 실수가 상처로 남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아가야 하는 군인 역시 피해자다. 전쟁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만든다고 감독은 말한다.
신은 과연 존재할까. 평화는 인류의 가장 큰 바람인데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영화 ‘폭격’은 테레사 수녀를 통해 참혹한 전쟁은 왜 지속되는지 묻는다. 젊은 테레사 수녀는 무차별한 폭격과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을 보며 신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긴다. 나치에 고통을 받는 덴마크를 외면하는 신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학을 하고 나치 정권하의 덴마크 경찰인 프레데릭과 키스를 하는 등 하늘을 보며 신에게 도발한다. 결국 신의 응답은 얻지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프레데릭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게 된다.
영국 여론조사기관에 의하면 여러 직종 중에서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직종은 정치인이라고 한다. 정치인과 독재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그 결과 국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옴니버스처럼 진행되는 영화 ‘폭격’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폭격과 너무 닮아있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전쟁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영화 ‘폭격’은 우리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상기시키면서 또한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