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시대] "특정 진영 이익에만 봉사, 여가부 폐지" vs "통합 위해 재고"
입력 2022.03.13 06:49
수정 2022.03.12 17:13
尹 1월부터 '여가부 폐지' 수차례 공언…"구조적 성차별 없다, 아동·가족 포함 종합부처 신설"
한국여성단체연합 "1% 내 표차, 2030 여성 결집 결과…구조적 차별에 대한 몰이해 거둬야"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폭력 용인될 것…여소야대 국회, 여가부 폐지 현실적으로 어려워"
"문재인 정부의 여가부, 본래 존재 이유 망각한 채 특정 진영 및 정치세력 이익에만 봉사…폐지 당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여가부가 22년 만에 폐지 위기에 처했다. 여성계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는 성평등 가치에 반하고 국민통합을 내세우는 차기 정부의 지향에도 어긋난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여가부가 폐지론까지 내몰린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여가부가 본래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특정 진영 및 정치 세력의 이익에만 봉사했기 때문이라며 조직 개편을 넘어선 부처 해체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여가부 폐지'를 여러 차례 공언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별다른 설명 없이 올렸다. 여가부 폐지 공약이 논란이 되자 윤 당선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아니라 아동, 가족, 인구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여성가족부 폐지'는 지난달 24일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가 발표한 정책공약집에도 명시됐고, 윤 당선인은 언론인터뷰를 통해 "더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으며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며 여가부 폐지 배경을 거듭 설명했다.
여성계에서는 윤 당선인이 소수점 차이로 대선에 승리한 배경으로 '이대남(20대 남성)'을 잡으려던 공약이 '이대녀(20대 여성)' 표심을 상대 후보에게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하고, 진정한 성평등을 위한다면 관련 공약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0일 입장문을 통해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1%도 안 되는 아주 근소한 표차로 제20대 대통령을 선출된 민심의 의미를 잘 헤아리길 바란다"며 " 2030 여성시민들이 성평등 정책의 후퇴를 막기 위해 선거 막판 강력하게 결집한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범죄 무고법 처벌 강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구조적 차별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할 뿐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강화하고 용인하는 위험한 정책인 만큼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실제로 여가부 폐지가 현실화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관은 "여성가족부의 사업으로 학교 밖 남자 청소년들, 한부모 가족에서 자라는 남자 아이들 등도 혜택을 보고 있다"며 "여성가족부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사업이나 정책들을 폐지한다고 하면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국회에서도 여가부 폐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도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번 성별 갈라치기 캠페인 전략이 실패했음을 인지했고 무엇보다 통합의 과제가 중요한 시점이라 여가부 폐지는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2030 여성 시민들이 투표에서 보여준 의지를 당선인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성평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한다면 여성가족부가 실질적으로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 통합을 과제로 안은 차기 정부로서 모두를 포용하는 성평등 정책을 제시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윤 당선인은 20대 남성만의 대통령이 아닌, 통합과 화합의 과제를 안은 전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무조건 폐지'가 아닌 개선·보완점을 찾아야 한다"며 "현재 여가부가 여성만을 위한 부처로 오해되고 있는데, 여가부를 아동·청소년 부서와 성평등부서로 나누고, 아동·청소년·가족의 1차적 안전망은 물론 성평등 전반에 대한 정책을 힘있게 실현하는 조직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양성평등 가치를 지향한다고 했는데 여성가족부 폐지는 그 가치에 반하는 정책이므로 재고해야 한다"며 "그간 국민의힘의 젠더 정책은 임신·출산·육아 등 전통적인 어머니상이나 성범죄 피해자 등 여성을 한정된 이미지로 규정한 정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차기 정부는 성차별이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여성 시민이 다양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정책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직 개편을 넘어선 부처 해체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강경하다. 익명을 전제로 한 여성학자는 "여성가족부의 존재 목적이나 기능이 잘못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문재인 정부의 여가부가 이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특정 진영과 정치 세력의 이익에만 봉사하고 함몰됐었기 때문에 아예 폐지, 해체하고 새로 만들자는 것"이라며 "진보 진영의 최대 치적이자 산물인 여가부가 그들의 범죄와 치부를 감춰주고 무마시키는데만 급급하다 산산조각이 난 꼴"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에서 고문을 맡았던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윤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여가부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부처를 신설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며 "신설될 부처에는 아동·청소년·양성평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형태의 약자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