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시대] 이재용·정의선 업고 다닐 세상 만들까
입력 2022.03.10 11:27
수정 2022.03.10 11:28
민간 주도 경제성장 추구하는 '작은 정부'…기업 자율성 보장
네거티브 규제 도입으로 경영활동 숨통…신산업 진출 활성화
노동규제 관련 보완입법 등으로 노사 '힘의 균형' 정상화 기대
"대통령이 되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기업인을 업고 다니겠다. 해외 나간 공장 국내로 다시 들여오는 기업 있으면 규제 풀어주고 세금 깎아주고 업고 다니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경기도 부천역 앞 유세에서 자신의 일자리 공약을 언급하며 덧붙인 발언이다.
두 달 뒤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그가 약속대로 기업인들을 업고 다니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인들이 일자리를 창출할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10일 윤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경제단체들은 잇달아 환영 논평을 내고 규제개혁, 노동개혁,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을 통한 민간 주도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표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각종 규제와 친노동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은 경제계는 이번 대선에서 내심 윤 후보의 당선을 바랐다.
여당 후보가 친노동 정부를 승계하는 것도 탐탁찮은 일이지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겠다는 여당 후보의 공약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컸다.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신산업을 주도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은 역으로 기업 자율성을 제한하고 정부 주도 사업에 대한 투자를 강요하는 계획경제 체제로의 회귀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경제는 가장 잘 하는 이들에게 맡겨야 한다”면서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활동 보장을 주요 경제공약으로 내세웠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를 제거하는 것, 즉 규제 혁파라는 게 윤 당선인의 철학이었다.
작은 정부 지향 …기업 자율성 보장하고 정부는 인프라 구축 지원
이같은 철학에 따라 5월 출범할 윤석열 정부는 기본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당선인의 공약을 살펴보면, 정부는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생산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인프라 구축 등을 지원하고,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구상이 담겨있다.
신산업 발굴과 육성에 있어서도 정부가 특정 분야 육성과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마련해주는 데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대‧중소기업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제도적으로 대기업을 압박할 게 아니라 스타트업,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기업 성장 사다리가 복원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예산 지출도 ‘과도한 국가채무를 만드는 정책은 지양한다’는 방향성이 확고하다. 무리한 복지에 집착하지 않는 만큼 ‘세금폭탄’ 우려도 덜하다. 기업 세제 측면에서도 기업의 부담을 줄여 투자를 유도하는 쪽으로 전환한다는 기조가 엿보인다.
재계 숙원 네거티브 규제 도입으로 기업 활동 영역 확대
기업인들의 단골 요구사항인 ‘규제 혁파’ 측면에서도 윤 당선인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개별 규제를 찾아내 제거하는 식이 아니라 규제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기존의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포지티브 규제는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 외에 모두 금지하는 방식인 반면, 네거티브 규제는 금지하는 것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이다.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 도입되면 기업의 활동 영역은 넓어지고 그만큼 자율성이 보장된다. 신사업 진출에 있어서도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생긴다.
물론 기존 포지티브 규제를 영미법 체계와 같이 행위규제를 두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행정 관련 법제를 통째로 뜯어고쳐야 하는 일이다. 윤 당선인은 자신이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런 복잡한 일을 해낼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강골 검사’로 불렸던 시절 기업인들에 대한 굵직한 수사를 맡은 경험이 있는 만큼 윤 당선인은 전체적인 규제의 틀과 법 체계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검사 시절에는 포지티브 규제에 따라 기업인들을 옭죄는 역할을 맡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로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 기업인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이사제 타협했지만…주 52시간제, 최저임금 등 합리적 정책 기대
기업인들은 윤 당선인에게 기존의 노동계 편향적인 정책들도 균형감 있게 조정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새로운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중도 확장 차원에서 노동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 결과 올해 초 국민의힘의 동의 하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공무원·교원 타임오프제 도입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업들은 이같은 제도가 앞으로 민간기업 도입 압박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나, 윤 당선인이 스스로 동의를 표한 제도에 제동을 걸 명분이 약하다.
다만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기조를 감안하면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관해서는 문재인 정부에 비해 정책 유연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 52시간제에 대해서는 사업주와 근로자의 합의를 전제로 연장근로와 탄력근로 단위 기한을 월단위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최저임금제도 문 정부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반면교사 삼아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등 경제지표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경제계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는 법 자체를 뒤바꿀 수는 없지만 보완입법 등을 통해 사업주가 과도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면서 중대재해 예방효과를 높이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점과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한다는 점에서 기존보다 경영 리스크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면서 “여러 가지로 대외 환경이 좋지 않지만 그런 정책들이 효과적이라는 점이 증명되도록 기업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