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위기 아직인데…5대 금융그룹 부실 대비 '느슨'
입력 2021.11.19 06:00
수정 2021.11.18 10:59
5대 그룹 충당금, 전년比 37%↓
"고삐 늦출 때 아냐" 우려 목소리
국내 5대 금융그룹이 대출 부실에 대비해 쌓는 충당금 규모를 1년 새 1조원 넘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했던 지난해에 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해 뒀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금융지원 정책으로 대출 부실이 억눌려 있는 가운데, 역대급 실적에도 불구하고 충당금을 축소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들어 3분기까지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개 금융그룹의 신용손실충당금 전입액은 총 2조209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4%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액수로 따지면 1조3211억원에 달하는 감소폭이다.
신용손실충당금은 금융사가 고객들에게 빌려준 돈의 일부가 회수되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수익의 일부를 충당해 둔 것이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우선 KB금융의 신용손실충당금이 5965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20.9% 줄었다. 신한금융 역시 5653억원으로, 우리금융은 5062억원으로 각각 46.2%와 13.7%씩 해당 금액이 감소했다. 하나금융도 2892억원으로, 농협금융은 2520억원으로 각각 58.6%와 42.8%씩 신용손실충당금이 줄었다.
금융그룹들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충당금을 워낙 많이 쌓아둔 탓에 올해는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작아 보이는 것이란 입장이다.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해둔 만큼, 이제는 어느 정도 속도조절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조사 대상 금융그룹들의 신용손실충당금 적입액은 4조7447억원으로 전년 대비 52.6% 급증한 바 있다.
대출 부실 리스크가 크게 축소되고 있는 흐름도 충당금을 줄일 수 있는 자신감의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이 보유한 원화대출 잔액 대비 1개월 이상 원리금이 연체된 금액의 비중은 0.24%로 1년 전보다 0.07%p 낮아졌다. 이 같은 연체율은 역대 최저치다.
◆일각, 금융지원 종료 대비 지적도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충당금 쌓기가 필요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지원 정책이 대출 건전성을 좋아 보이게 만들고 있는 착시효과를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책이 종료되면 본격적으로 대출 부실이 불거질 가능성이 큰 만큼 충당금 적립 속도를 늦출 때가 아니란 비판이다.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은행 여신을 둘러싼 위험이 축소된 배경에는 정책적 효과가 자리하고 있다. 금융권은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 방안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원금 상환의 만기를 연장해주고 이자 상환을 유예해주고 있다. 당장 원금이나 이자를 갚기 어려워 연체로 잡혀야 할 대출이 수면 아래에 억눌려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감춰진 부실까지 감안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코로나19 금융지원 조치를 내년 3월까지 또 다시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금융권의 대출 만기·이자 상환 연장 조치는 2년 가까이 이어지게 됐다.
더구나 올해 들어 금융권은 실적이 크게 성장하며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5대 금융그룹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거둔 당기순이익은 14조36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3% 급증했다. 5대 금융그룹 모두 3분기만에 지난해 전체 순이익을 뛰어 넘으며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장기화와 위드 코로나에 따른 확진자 추가 확대, 그리고 금융지원 종료 등 향후 예고된 여러 리스크를 감안하면 단순 지표만 놓고 기계적으로 충당금을 줄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