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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물밑 외교전', 문재인 정부가 중재했나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1.08.21 05:02 수정 2021.08.21 11:05

부분적 제재완화 고리로

北美 중재자 자처했을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물밑 외교전'을 중재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북미 고위급 인사들이 공개 메시지를 주고받는 배경에 문 정부의 관여 의지가 반영돼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20일 한국정치학회 주관 웨비나에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문 정부가 부분적 제재해제를 고리로 "북미협상을 중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선 이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 완료를 선언한 지난 4월 30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WP)가 '부분적 비핵화와 부분적 제재완화의 교환'이라는 미 대북정책의 골자를 소개했다며 "이에 대해 북한이 많은 기대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례로 대미 메시지를 일절 삼가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성김 대북특별대표 방한 전날(6월 18일·조선중앙통신)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밝힌 점은 북측의 '관심'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하지만 김 대표는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6월 21일)에서 "북한이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만나자는 우리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를 희망한다"며 부분적 제재완화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이에 북한은 다음날과 다다음날 각각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리선권 외무상을 내세워 '꿈보다 해몽이다'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접촉은 생각 없다'며 미국 측에 맞불을 놨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무엇보다 이 교수는 국정원장의 '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박지원 원장은 지난 6월 9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최근 남북 간 의미 있는 소통이 이뤄졌다"고 밝힌 바 있다. 7월 9일에는 북측이 △광물 수출 허용 △정제유 수입 허용 △생필품 수입 허용 등과 관련한 부분적 제재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런 것을 미국이 구두로라도 언급한다면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7월 말 방한했던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후 북한은 지난해 일방 단절했던 통신연락선을 복원(7월 27일)하고, 김여정 부부장을 내세워 연합훈련 취소를 공개 요구(8월 1일)했다. 북한은 그간 북미대화 재개 조건으로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연합훈련을 대표적 적대시 정책으로 꼽아왔다.


박 원장은 국회 정보위 개최를 자처해 개인 의견을 전제로 연합훈련 취소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3개 분야에 대한 북측의 부분적 제재완화 요구가 여전히 유효하다고도 했다(8월 3일).


김 부부장의 연합훈련 취소 요구 이후 당정에서 동조 메시지가 잇따랐지만, 한미 군 당국은 연합훈련을 계획대로 개최했다. 이에 김 부부장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8월 10일).


이 교수는 "박지원 원장 이야기를 종합하면 북한은 3가지(부분적 제재완화)에 대한 미국의 구두 약속이 있어야 실무회담에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문 정부가 부분적 제재해제 이슈를 통해 북미협상을 중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데일리안
"美, 전략적 인내 염두에 두는 듯"
경제난 北의 대화 복귀 가능성 고려


이 교수는 북미대화가 일단 재개되면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도 미국이 사실상 '전략적 인내'에 가까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이 생각보다 진전된 내용이 많고, 협상이 시작되면 합의될 수 있는 내용이 많다고 본다"면서도 "미국이 조건을 달고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 협상이 잘 진행되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방법론"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 카드를 여전히 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전략적 인내가 "북한이 먼저 행동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제재와 강압을 기본전략으로 삼고 시간 싸움에서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북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라며 "조만간 북한이 먼저 대화에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제재·코로나19·자연재해 영향 등으로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해 있는 만큼, 조건 없는 대화를 밀어붙일 경우 북한이 결국 호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미국이 가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북한이 조건 없는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면서도 "생각하는 것보다 북한이 내구력을 가진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는 북한이 '버티기'에 들어가며 강경대응에 나설 경우 한반도 정세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 자유로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 마을(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성김, 연합훈련 중 방한 …대북 메시지 주목


무엇보다 북한이 연합훈련 개최에 강하게 반발한 이후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21일) 방한하는 성김 대북특별대표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김 대표는 오는 23일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등을 갖고 다음날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


김 대표가 '조건 없는 대화'라는 기존 입장만 재확인할 경우 북한은 예고했던 강대강 대응, 즉 군사도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러시아 북핵수석대표 역시 오늘부터 26일까지 방한키로 해 북한의 셈법 역시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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