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폭격 맞은듯한 명동…원희룡이 그곳에 섰다
입력 2021.08.09 05:00
수정 2021.08.09 00:00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확대
주장하며 명동 한복판서 1인 시위
시민도 놀랐다 "이 정도인 줄 몰라"
元에 다가와 "정부가 대책 세워야"
폭격 맞은 듯 두 집 건너 한 집 꼴로 셔터가 내려진 명동 상권 한복판에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섰다. 현 정권의 방역정책에 자신의 헌법상 권리를 내려놓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말로만 '두터운 지원'이 아닌, 제대로 된 손실보상을 하라는 여론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여러분, 미안합니다'라는 피켓을 치켜든 원 전 지사에게 상권 몰락에 경악한 시민, 울분을 터뜨리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대표가 다가왔다. 원 전 지사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감정이 북받친듯 "다시는 이런 대통령을 우리가 만나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희룡 전 지사의 1인 시위가 예고된 8일 오전 11시 무렵, 명동역 6번 출구로 나오자 바로 목좋은 호텔이 보였다. 한때 엔화와 위안화를 뿌리는 외국인들이 묵었을 이 호텔은 '호텔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라며 입간판까지 내걸고 장기투숙객 유치에 안간힘이었다.
솔라리아니시테츠 호텔 방향으로 걸어들어가자 폭격을 맞은 듯한 명동 상권의 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세 건물에 잇따라 임대 펼침막이 내걸린 것은 예사, 네거리의 세 귀퉁이 점포가 문을 닫은 경우도 있었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 N사 매장이 있던 곳에는 '5월말로 영업을 정리하고 폐점한다'는 안내문이 세 달이 돼가도록 그 상태 그대로 붙어있었다.
몇 층짜리 건물 전체가 텅 비어 흡사 폐건물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보도가 사람으로 넘쳐나야할 주말·휴일인데 문닫은 남의 가게 앞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악세사리를 파는 노점상조차 손님이 없어 문턱에 주저앉아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보도 공사는 태연하게 가게 앞을 전부 막고 하고 있었다. 문을 닫았기 때문에 아무 상관 없기 때문이었다. 간판 글자 일부만 떨어져나간 채 줄줄이 '임대' 알림을 내건 가게들은 한적한 보도와 맞물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대한민국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다는 명동 충무로1가 24-2,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소상공인·자영업자 여러분, 미안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섰다. 20개월이 다 돼가도록 진정되지 않는 코로나19 사태와 현 정권의 방역정책 실패, 대외관계 파탄까지 삼중고에 신음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로하고, 손실보상 확대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다.
"文, '짧고 굵게' '터널 끝' 자화자찬
때만 나타나고 책임져야할 땐 사라져
이런 대통령을 다시는 우리 국민이
만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부부가 지나가다 1인 시위를 하는 원희룡 전 지사의 모습을 봤다. 여성은 "진짜 문제다. 소상공인들, 진짜 어떻게 하느냐"고 연신 탄식을 하더니, 잠시 후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원 전 지사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언론 앞에서 꼭 밝히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다.
스스로를 50대 중반이라 밝힌 여성 김모 씨는 원 전 지사에게 다가가더니 "남편과 롯데백화점에 왔다가 명동에 한 번 가보자고 해서 2년만에 왔는데, 이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다"며 "일요일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지나다닐 수가 없던 곳"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주지사도 그만두셨던데, 더운데 너무 고생이 많으시다"며 "정부에서 국민의 삶이 이 정도로 무너지면 대책을 세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개탄했다.
이에 원희룡 전 지사는 "전국민 위로금을 준다고 돈을 탕진해버리면 무너지는 사람들은 정말 무너져서 못 일어난다. 여기서 (소상공인·자영업자가) 더 무너지면 나라 경제도 못 일어난다"며 "국민들이 힘을 합해서 정부가 정신을 차려 똑바로 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김 씨도 "잘사는 사람들이야 계속 잘살겠지만 정부에서 소상공인을 살려서 중산층을 지켜야 한다"며 "포커스를 잘못 맞추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 아니냐"고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난 정말 놀랐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1인 시위를 이어가는 원 전 지사에게 "감사하다"고 꾸벅 고개를 숙이고 현장을 떠났다.
이날 상징적으로 명동에 서긴 했지만, 몰락하는 전국 상권의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위해 무더위에 거리로 나섰다는 게 원 전 지사의 설명이다. 명동을 비롯한 전국의 상권, 점포 하나하나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몰락은 빈민으로의 전락을 야기해,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국가경제가 다시 일어날 여력 자체를 고갈시킨다는 판단이다.
무더위 속에서 시간이 흐르자 한지엽 중소상공인·자영업자 비상행동연대 회장이 현장에 합류했다.
한 회장을 반갑게 맞이한 원희룡 전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짧고 굵게 4단계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또 2주 연장됐다"며 "희망고문을 넘어 자영업자를 말려죽이는 말살 정책"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짧고 굵게 끝내겠다고 호언장담, 터널 끝이 보인다고 자화자찬할 때만 나타나고, 2주 더 연장할 때는 아무런 사과와 보상 대책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냐"며 "생색낼 때는 나타나고 국민들에게 책임져야할 때에는 흔적도 없는 대통령, 다시는 이런 대통령을 우리가 만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관성과 판단 기준을 찾기 힘든 정권의 방역 정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원 전 지사는 "태권도 학원은 영업이 되고 킥복싱 학원은 영업이 안되는 게 현실이다. 왜 안되느냐 했더니 킥복싱은 올림픽 종목이 아니란다"며 "바이러스가 올림픽 정식종목 여부를 가려가며 감염시키느냐"고 혀를 찼다.
명동 상권 몰락에 경악한 시민들 의견
울컥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울분 경청
"이분들은 대한민국 경제의 실핏줄
국민 권리의 희생에 대해선 보상해야"
원 전 지사는 한 회장의 권유로 나인트리 호텔 방향으로 걸으며 상권 현황을 살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문닫은 가게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원희룡 전 지사는 텅 빈 가게 문고리를 잡아보더니 "여기 문닫은 분들 어디 갔겠나. 어디 더 좋은데서 매장을 차렸겠느냐"며 "빈민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세금으로 감당해야할 복지가 늘어날수록 경제는 어려워진다"고 탄식했다.
아울러 "먹자골목 같은 곳을 저녁에 다녀보면 눈물이 나서 앞이 캄캄하다"며 "'나는 장사 안한다, 나는 월급 나온다'고 해서 외면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자녀, 우리의 지인들이 다 연결돼 있어 국가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지엽 회장은 원희룡 전 지사를 향해 현 정권이 공언한 '두텁고 충분한 지원'을 '말장난'이라고 일축했다. 한 회장은 "말로는 두텁고 충분한 지원을 하겠다고 말장난을 하는 게 더 억울하다"며 "국민들은 우리가 다 2000만 원씩 받는 줄 아는데 그것은 맥시멈이고 현실은 몇십만 원이 고작"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 정부는 소상공인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하는 것인지, 억압과 탄압으로 말살하려 하는 것 같다"며 "원 후보가 그런 부분을 충분히 인식해서 소상공인이 생존권과 인간 존엄성,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원희룡 전 지사는 현 정권의 '말장난'에 울컥하며 울분을 쏟아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편이 돼줄 수 있을까. 한 회장을 배웅한 뒤, 현장의 기자들과 만난 원 전 지사는 재차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확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원 전 지사는 "당장 우리 주택가, 우리 집앞에서부터 도시 곳곳에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대한민국 경제의 실핏줄처럼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재산권의 강제수용, 영업권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국민 권리의 희생이기 때문에 보상해야 한다"고 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