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 일 시켰다가 감옥 갈라"…산업계 중대재해법 공포
입력 2021.07.14 14:00
수정 2021.07.14 14:15
경총,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 산업계 긴급 대책회의' 개최
자동차·반도체·조선·건설·철강·석유화학·정유 등 9개 업종 참여
"경제계 보완입법 요구 및 시행령 제정 건의 미반영" 한목소리 비판
모호한 사업주 책임 범위와 산업 현장의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처벌 규정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대해 산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산업계는 입법보완 및 시행령 제정을 요구하며 공동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4일 주요기업 안전·보건 관계자 및 업종별 협회가 참석한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 산업계 긴급 대책회의’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날 대책회의에는 조선·자동차·타이어·반도체·디스플레이·건설·철강·석유화학·정유 등 우리나라의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주요업종의 안전보건관계자가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경제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쟁점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시행령 제정안이 마련됐다”며 “연내 보완입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대로 시행령이 제정될 경우 사고발생 기업의 경영책임자는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법률상 모호했던 경영책임자 의무가 시행령에서조차 매우 불명확하여, 어느 범위나 수준까지 의무를 이행해야 법 준수로 인정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시행령 제정안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합리적인 법령제정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제기했다.
시행령 상 안전보건관리체계에는 ‘충실하게’, ‘적정한 예산’, ‘적정한 비용과 수행기간’, ‘적정규모 배치’, ‘충분한 상태’등 모호한 문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경영책임자의 의무 범위를 벗어나면 징역까지 받을 수 있는 사안인데 이런 문구로는 의무범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산업계의 지적이다.
더구나, 안전·보건 관계법령이 무엇인지 시행령에 전혀 규정되지 않아 경영책임자가 의무내용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책회의에서는 시행령 제정안이 산업전반에 미칠 영향과 부작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옥외작업 비중이 매우 높은 조선·건설업종 등은 ‘열사병’이 직업성 질병 목록에 규정된 점을 가장 큰 우려사항으로 꼽았다.
조선·건설업계는 “사업주의 다양한 보건관리조치에도 불구하고 여름철에는 필수적으로 열사병 환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중증도(부상자와 같은 6개월 이상 치료) 기준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회사의 대표이사가 매년 수사 및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일례로 A사업장은 연평균 열사병 증상자가 약 15명, B사업장은 약 20명 정도 발생하고 있으나, 대부분 간단한 진료와 휴식을 통해 수일 내 회복이 될 정도로 재해강도가 경미하다.
하지만, 이들 사업장에서 발생한 열사병 환자 중 3명이 4일 이상 요양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인정을 받을 경우 중대산업재해로 간주되며, 해당기업의 경영책임자가 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타이어업종 등은 “시행령 제정안은 원청의 책임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아 사업장 내 모든 제3자의 종사자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며 “정부가 해석이나 가이드라인 만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은 형법상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화학물질 취급 작업이 많은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는 “중대시민재해 대상인 원료 또는 제조물 목록 중 포괄규정(별표5 제12호 :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생명·신체에 해로운 원료 또는 제조물)이 도입될 경우, 경영책임자가 관리해야 할 원료 및 제조물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져, 시민재해 발생 시 법적용 대상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건설업종은 기업 규모를 감안하지 않고 단순 시공능력평가 순위로 전담조직 설치 의무를 부여한 점을 문제삼았다.
건설업계는 “경영책임자 의무 중 전담조직 설치 요건인 시공능력평가 순위 200위 이내 건설업체의 대부분은 중소규모에 해당된다”며 “정부가 건설산업 환경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시행령 제정안을 마련한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197위인 C 건설업체의 본사 전체인력은 21명이며, 순위가 61위인 D 건설업체의 본사 전체인력은 38명으로, 이들 기업들은 제조업으로 치면 소규모사업장에 해당된다. 전담조직 설치의무가 200위 이내로 규정될 경우 이런 소규모 인력으로 본사를 운영 중인 건설업체도 전담조직을 설치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
정유업계는 “중대시민재해 대상인 공중이용시설에 주요소와 가스충전소를 포함시키면서, 단순히 면적으로 적용대상을 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사업장 내 유휴부지나 임대(음식점, 편의점 등)공간은 별도의 사업자가 관할하고 있는 만큼 적용기준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입법예고된 시행령 제정안으로는 내년 법 시행 시 발생할 수 있는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업종별로 제기된 다양한 의견들을 정부가 입법예고 기간 중 충분히 수렴해 시행령을 합리적으로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개인의 부주의 등 다른 원인에 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도록 법률수정이 필요하며, 경영책임자 범위, 도급인의 책임범위 등이 구체화될 수 있도록 연내에 보완입법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대책회의 결과 등 산업계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한 경제계 공동건의서를 향후 정부부처에 제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