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제로 통합당] 의원도 어리둥절…'8·31前 전당대회' 두고 비대위 의결
입력 2020.04.29 03:00
수정 2020.04.29 04:48
당헌 개정안은 먼저 상임전국위에서 발의돼야
비대위원장 임명안은 바로 전국위서 의결가능
상임전국위 무산에도 '김종인 비대위'만 의결
'추대 당사자가 거절하는 추대' 상황 야기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미래통합당 상임전국위·전국위가 누구도 상상 못한 결말을 맞았다. 8월 31일까지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당헌 부칙은 그대로 놔둔 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안이 의결된 것이다. 이로 인해 추대 당사자가 거절하는 추대라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전국위의 전(前)단계인 상임전국위가 성원 미달로 무산됐는데도 전국위가 그대로 강행돼 김종인 위원장 임명안이 의결되는 일도 일어났다. 일부 의원들조차 어리둥절했던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당헌 개정안과 비대위원장 임명안의 절차가 달라 일어난 일이라는 설명이다.
사달의 근원은 총선 직전 있었던 중도보수대통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전진당 3당이 합당하는데 당대표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그대로 맡는 게 어색하니, 황 대표의 임기를 단축해 총선 직후 바로 전당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는 신설합당한 미래통합당의 당헌 부칙 제2조 2항에 "차기 전당대회는 2020년 8월 31일까지 개최한다"고 명시되는 결과를 낳았다. 심재철 대표권한대행이 "당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것으로 예상하고 8월말까지로 잡았다"고 토로했듯이, 총선에서 승리할 줄 알고 넣은 부칙이었다. 하지만 4·15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황교안 대표는 선거일 자정을 버티지 못하고 전격 사퇴했다.
당대표 궐위로 비대위 체제 전환이 불가피해지자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에게 눈길이 쏠렸다. '김종인 반대파'로 28일 전국위에 불참한 한 통합당 의원은 "무제한 임기의 '김종인 비대위'는 마뜩찮지만 그분의 중량감이나 간결한 메시지 전달 능력은 인정한다"며 "총선에서 지원유세를 한 번이라도 받아본 후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비대위'는 점차 대안부재론으로 발전했다.
김 위원장은 "전당대회만 준비하는 '관리형 비대위'라면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8월 31일까지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고 명시한 당헌 부칙은 뜻밖에 '김종인 모시기'의 걸림돌로 전락했다. 비대위원장 임명안과 당헌 부칙 제2조 2항을 삭제하는 당헌 개정안의 동시 처리가 불가피하게 됐다.
당헌(黨憲)은 당의 헌법이다. 개정 절차가 엄격하다. 반면 비대위원장 임명안은 느슨하다. 28일의 '희한한 결말'의 씨앗은 여기에서 잉태됐다.
통합당 당헌 제90조는 당헌 개정안의 발의는 상임전국위의 의결로 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발의된 당헌 개정안은 전국위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최고위의 의결로도 당헌 개정안은 발의할 수 없는 구조다. 상임전국위에서 먼저 당헌 개정안을 발의해줘야 비로소 전국위에서 의결할 수 있다.
'반(反)김종인'파가 노리고 들어온 '약한 고리'가 이 지점이다. 상임전국위는 총원이 45명에 불과하다. 10명 정도만 '작업'을 해도 성원을 위협할 수 있다. 수백 명을 '작업'해야 하는 전국위와는 다르다. 결국 이날 상임전국위는 45명 중에서 17명만 참석했다. 23명이 참석해야 성원인데 6명이나 미달해서 당헌 개정안을 발의조차 해볼 수 없게 됐다.
이렇게 상임전국위가 성원 미달로 무산되자 '김종인 비대위'도 자동 불발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날 상임전국위 현장에서는 실제로 통합당 소속 일부 의원들조차 비대위원장 임명안도 상임전국위의 의결이 필요한 것으로 혼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합당 당헌에 규정된 내용은 다르다. 당헌 제96조 3항에 따르면,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국위의 의결을 거쳐 대표권한대행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상임전국위는 거쳐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상임전국위가 성원 미달로 무산됐는데도 후순위 절차인 전국위 개회가 강행된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표결까지 가서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의결됐다. 8월 31일까지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당헌 부칙은 놔둔 채 '김종인 비대위' 임명안만 의결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이유다.
이날 전국위에는 총원 639명 중 323명이 참석했다. 그 중 80여 명은 '김종인 비대위' 반대파였다. 이에 만약 당헌 개정안이 상임전국위를 통과했더라도 전국위 의결은 어차피 불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합당 관계자는 "비대위원장 임명안은 재적 과반수 출석, 출석 과반수 찬성이라는 일반 의결정족수로 의결이 가능한 반면, 당헌 개정안은 재적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며 "323명의 출석 전국위원 중 3명을 뺀 전원이 찬성했어야 했다는 말인데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