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이 반기문 띄우기? 읽어보니...

전형민 기자
입력 2016.10.19 06:17
수정 2016.10.19 06:26

일각에서 '반사이익' 얻을 일부 정치인과의 연관성 의심

사실에 기초한 '사초'에 가까워 '정치적 의도 없다' 중론

'빙하는 움직인다' 회고록을 펴낸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회고록에는 노무현 정부 당시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의 의견을 물은 뒤 기권 입장을 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처럼 묘사돼 논란을 빚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최근 '회고록'을 출간해 정가에 폭풍을 몰고온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가 애당초 정치적 저의를 갖고 있었는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회고록으로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곤경에 처한 만큼,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일부 정치인들과 연관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일각에 있으나 '억지주장'이라는 게 중론이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는 지난 7일 출간후 정치권의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15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내통' 발언으로 주목받으며 단숨에 정가의 최대 이슈로 급부상했다.

'회고록'은 국정감사가 마무리돼 국면이 바뀌는 시점에 출간됐고, 야권 선두 대권주자가 논란의 당사자로 연루됐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케 했다. 특히 송 전 장관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및 손학규 전 고문 간의 과거 인연이 일부 언론을 통해 집중 조명되면서 이같은 의심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송 전 장관의 회고록 출간 배경에는 '정치적 의도는 없다'라고 말한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은 칠순을 넘긴 외교 전문가의 말 그대로 '회고(回顧)'일 뿐,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나온 탓에 '뜨거운 감자'가 됐다는 설명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송 전 장관은 기본적으로 진보 성향이고 햇볕정책도 지지한다. 최근 안보 이슈였던 '사드 배치' 문제에서조차 '반대'했던 그가 무슨 정치적인 이유로 반기문 총장을 밀겠느냐"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이 새누리당 친박계가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있는 반 총장의 반사이익을 위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송민순 전 장관이 반기문 총장을 밀려고 책을 쓴게 아니라는 건 지금 반기문 지원 의혹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알 것"이라며 "당시 참여정부측 인사들이 즐겨 쓴 용어가 '진정성'이다. 송 전 장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진정성'이야말로 함께 일한 사람들이 더 잘안다"고 덧붙였다.

반 총장과 송 전 장관이 외교 분야 고위 공무원으로서 함께 일한 것도 사실이지만 송 전 장관이 반 총장을 정치적으로 도울 만큼 특수관계는 아니라는 진단도 나왔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두 분이 친분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념적으로 코드가 맞아서라기보다는 그냥 외교부 공무원 중에 자기 색깔이 덜한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진보정권에서 서로 함께 일하게 된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원래는 작년 6·29 선언 10주년을 기념해 발간하려고 했는데 늦어졌다'는 송 전 장관의 발언 그대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다만 "송 전 장관이 반기문 총장에 대한 호감은 몰라도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마 과거 참여정부 시절 문 전 대표와 함께 일해본 경험을 통해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대선 전에는 (책을) 펴내야한다고 생각은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송 전 장관의 이런 생각에 대해 "정치적인 의도라기보다는 일종의 소명의식"이라고 선을 그었다.

'빙하는 움직인다' 회고록을 펴낸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회고록에는 노무현 정부 당시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의 의견을 물은 뒤 기권 입장을 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처럼 묘사돼 논란을 빚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일각에서 '반사이익' 얻을 일부 정치인과의 연관성 의심
외교 전문가의 말 그대로 '회고'일 뿐 '정치적 의도 없다'는 게 중론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560여쪽에 달하는 회고록 중 문제가 된 부분은 단 8쪽에 불과하다"면서 "단순한 회고록을 가지고 조의제문(弔義帝文)이나 해서파관(海瑞罷官)을 하고 있다. 책은 죄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의제문'은 조선시대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김종직의 글로 후대에 이 글을 작위적으로 해석해 글을 작성한 김종직은 부관참시하고 김종직이 속했던 사림파를 숙청한 사건이다.

황 평론가는 "사실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볼 때 대권주자 중 송 전 장관과 가장 가까워야할 사람은 외려 문재인 전 대표다. 청와대에서 안보실장, 비서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다"면서 "회고록에 정치적 의미를 담았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송 전 장관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통상 외국에 대사를 다녀오면 바로 국내에서 직을 맡기보다는 이른바 순회대사, 요즘은 국제관계대사라는 것을 한다"며 "송 전 장관은 주폴란드 대사를 마치고 경기도에서 국제관계대사를 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송민순 전 장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회고록 파문'은 정치판을 뒤흔드는 '강진'으로 작용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금 서로 이야기가 너무 엇갈리고 있는 만큼 만일 그 당시(11월16일) 대통령 주재회의의 회의록이 공개된다면 그 결과에 따라 문재인 전 대표가 극과 극을 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송민순 전 장관은 회고록에 '북한에 의견을 물어 (11월20일) 북한인권결의안 방침을 결정했다'고 적었고,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표 측은 '이미 11월16일 대통령 주재 안보회의에서 결정 후 송 전 장관을 설득하느라 발표가 늦어졌다'며 '회고록'과는 상충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

송 전 장관은 18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거기(회고록에) 있는 것 다 사실이다. 사실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공직에 30년간 있었던 사람이 소설을 썼겠느냐"고 답했다.

전형민 기자 (verdan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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