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 제보자 "조직 가입시 '우리의 수령은 김일성' 검증"
김수정 기자
입력 2013.11.21 14:43
수정 2013.11.21 18:11
입력 2013.11.21 14:43
수정 2013.11.21 18:11
<이석기 공판 현장>"한나라당 점거하라" 지시받기도
10년간 조직활동 맹목적 북한 추종에 환멸 제보 결심
“조직 가입시 절차가 어떠한가?”(검사)
“가입시 ‘우리의 수(首·수령)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린 자연스럽게 김일성 주석이라고 했다.”(제보자)
“그 조직은 일반인과 다른 이념을 갖고 있나?”(검사)
“일반 상식으로 이 조직을 예단하거나 판단하지 말라. 보통사람은 납득할 수 없다.”(제보자)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6차 공판이 21일 열린 가운데 이번 사건의 핵심 증거인 녹취록을 국정원에게 최초로 제보한 이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씨는 2011년부터 지난 9월까지 지하 혁명조직 RO 회합 등 대화내용이 담긴 녹음파일 47개를 국정원에 건넨 인물이다.
이날 오전 10시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운)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이 씨는 자신이 과거 RO의 핵심 조직원으로 활동했던 일화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지난 2003년말 RO에 가입, 올해 9월까지 10여년간 RO 조직원으로 활동해온 이 씨는 RO의 맹목적 북한 추종 행태에 실망한 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각오로 수사기관에 간련 내용을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법정에서도 1990년대 대학시절 학생운동까지 포함하면 20년 넘게 RO 조직에 몸담아온 사실을 언급하며, 조직의 실체에 대해 밝히기 시작했다.
이 씨는 “1990년대부터 대학에서 학모(학습모임)을 했었고, 수원 지역에서 다른 모임들도 참여했다”며 “(당시 모임은) 상부의 평가에 따라 조직원의 수준(충성심)이 얼마 정도인지 자체적으로 판단해 (충성심 정도에 따라 그룹별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당시 주체사상 등에 대한 학습은 물론 다양한 실천투쟁들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며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자들이) 주체사상에 거부감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확인된) 사람들을 ‘이클(이념서클)’로 넘어가는데 이때 ‘주체사상에 대하여’ ‘주체의 혁명적 조직관’ ‘김일성 회고록’ ‘김일성 저작집’ 등 북한 원전을 교재로 삼아 심화 사상학습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이클 단계 성원으로부터 자기소개서와 결의서, 추천서 등을 받아 상부에 보고한 뒤 북한산을 등반해 거기서 가입식을 가졌다”며 “당시 내게 (상부가) 모자를 주면서 ‘뜻 깊은 날이니까 간직해라’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 내가 RO조직원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그 당시 (가입절차) 내용을 일반인들이 들으면 놀랄 것”이라며 “가령, ‘우리의 수(首)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린 너무나 자연스럽게 김일성 주석이라고 했다”며 “또,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혁명가라고 대답했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이 씨는 조직 내 자신의 지휘관이 몇 차례에 걸쳐 바뀌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피고인) 이상호, 한동근, 김근래 등이 상부들이었다”며 “이들과 새로 만날 때 일종의 암호를 사용하는데 가령, 내가 카페 테이블 위에 신문을 올려놓으면 지휘관이 다가와 질문을 한다. 이때 상대가 ‘지역에서 오셨냐’고 물으면 ‘중앙에서 오셨냐’고 대답해 서로의 존재를 파악한다”고 주장했다.
제보자 “RO는 일반인들 상식으로 이해 못해”
이 밖에도 이 씨는 20년간의 RO조직 생활과 관련, 맹목적으로 상부로부터 지침을 받고 일해 온 점을 실토했다.
그는 “(자신의 지휘관이었던) 이상호 선배가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공약을 쟁점화하기 위해 한나라당 중앙당사를 점거하라고 지시했다”며 “(하지만 당시) 몸이 안 좋은 상태라서 점거에 나섰다가 구속됐을 경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하지만 당시 지시는) 조직의 결정이기에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구속될 때를 대비해 이 선배가 준 김일성 선집·김정일 저작집 등의 자료들을 철저하게 파기했다. 그런데 지시를 받기로 한 날 약속 장소에 갔는데 약속시간 10분 후에 지시가 취소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한 편으로는 ‘구속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RO가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간 괴로웠다”면서 “바로 당시 일을 계기로 내가 마음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서 이씨는 "그동안 RO조직의 활동은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2006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등 주요 현안마다 총집중돼왔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RO가 일반인과 어떻게 이념적으로 다르냐’는 검사의 질문에 “이 자리에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런 질문은 더 이상 하지 말라”며 “(RO는) 일반 상식으로 이런 조직을 예단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제보자 이씨의 신원보호를 위해 법정 방청석에 30여명의 취재진만 들어오도록 허가했다. 아울러 증인이 이석기 의원 등과 잘 아는 사이인 만큼 피고인석 앞에 가림막을 설치해 얼굴을 서로 마주보지 않도록 조치했으며, 지난 번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국정원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이씨도 법정에 출석할 때 검정색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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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기자
(hoho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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