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 투자 後 고객' 기조 바뀐 파운드리 후발주자…내실 다지기 총력
입력 2024.11.01 11:43
수정 2024.11.01 13:45
삼성도 인텔도 3분기 파운드리 兆 단위 영업적자
투자 속도 조절 및 초미세공정 집중으로 전략 선회
'큰 손' 유치 집착 보다는 AI 기회 찾는 IT 기업 공략해야
'타도 TSMC'를 위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후발주자들의 발걸음이 힘겨워보인다. 올 3분기 삼성·인텔 파운드리 사업이 나란히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하면서 실적 개선이 최우선순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파운드리 부진을 탈피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선회했다. 투자를 축소하는 대신 초미세공정에서 성과를 내 글로벌 고객사들의 발주를 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투자 속도 조절, R&D(연구개발) 경쟁력 강화 승부수가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발표한 삼성전자의 DS(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3조8900억원으로 시장 전망치(4조~4조5000억원)를 크게 밑돌았다. AI(인공지능)향 메모리 성과는 두드러졌지만 재고평가손 환입 규모 축소, 일회성 비용, 달러 약세 등 다양한 요인이 얽히면서 전체 실적을 끌어내렸다.
파운드리 부문도 전체 DS 실적 개선에 발목을 잡았다. 증권가는 3분기 시스템반도체(LSI(설계)·파운드리) 부문에서 1조4000억~1조6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거둔 것으로 추산한다. 메모리반도체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시스템반도체에서 깎아먹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투자증권은 "PS 충당 외에 파운드리에서 판매 난항 재공재고를 일회성 비용으로 반영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속되는 수주 공백 결과로 판단된다.
엔비디아향 HBM3E 공급 호재에도 시스템반도체가 계속 발목을 잡는다면 DS 부문 실적 개선은 그만큼 더뎌질 수밖에 없다. 증권가의 올해 시스템반도체 영업손실 추정치는 2조7000억~4조1000억원 수준으로, 전년과 견줘 적자폭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한 삼성 시스템반도체 부진 이유로는 수율(양품 비율)이 지목된다. GAA(게이트 올 어라운드) 기술을 적용한 3나노(㎚·10억분의 1m)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으나 막상 수율이 뒷받침되지 못해 고객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GAA 자신감으로 제조시설을 먼저 지은 후 주문을 받는 '셀 퍼스트'를 추진해왔으나, 유의미한 수주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파운드리 투자를 줄이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전날 컨퍼런스콜에서 "시황 및 투자 효율을 고려해 기존 라인 전환 활용에 우선순위를 두고 투자 운영중으로 올해 CAPEX(설비투자) 집행 규모는 감소할 전망"이라며 "내년에는 이미 보유한 생산 인프라 가동 극대화를 통해 선단 레거시 노드 고객 주문을 적기 대응할 계획"이라고 했다.
해외의 경우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테일러팹) 가동을 당초 2024년 하반기에서 2026년으로 미뤘다.
로이터통신은 지나달 18일 삼성전자가 고객사 확보를 하지 못해 테일러팹 ASML 제조장비 반입을 연기했다고 보도했다. ASML은 내년 매출 전망치를 낮추면서 시장 약세와 고객사 팹 건설 지연을 이유로 들었다. 시장에서는 팹 가동 연기 고객사가 삼성이라고 본다.
다만 2나노 GAA 경쟁력 확보는 지속한다. 곧 시장 주류로 자리잡을 2나노 이하 공정 고도화를 통해 파운드리 경쟁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2나노 GAA 공정은 모바일 및 HPC(고성능컴퓨팅) 응용의 최적화된 플랫폼 기술로 개발중이며 공정 성숙도 개선 및 IP 포트폴리오 확대를 통해 내년 제품 양산을 목표로 개발중"이라고 했다.
선단 GAA 공정을 제공할 수 있는 노하우, 2나노 이하 공정 로드맵 강화, 턴키 서비스 등 강점을 적극 어필해 모바일, HPC, AI 오토모티브 등 다양한 고객군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은 이같은 목표 아래 전사 R&D 비용은 분기 최대 수준인 3분기 8조8700억원을 투입했다.
이날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인텔도 삼성과 유사한 파운드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인텔은 이날 GAAP 기준 132억8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 순손실은 69억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3억 달러에서 적자전환했다.
파운드리 영업손실은 58억 달러(7조9800억원)로, 전년 동기(13억 달러)와 전분기(28억 달러)와 견줘 적자폭이 확대됐다. 여기에는 31억 달러 규모의 손상자산 비용(impairment charges)이 반영됐다. 당분간 적자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인텔은 직원 감축, 배당금 지급 중단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인텔이 추진중인 파운드리 구조조정은 크게 ▲파운드리 독립성 강화 ▲글로벌 인텔 파운드리 공장 건설 속도조절로 요약된다. 이에 따라 독일과 폴란드 프로젝트는 2년간 중단된다. 말레이시아는 시장 상황에 따라 가동 시기를 조정하기로 했다. 칩스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미국 내 파운드리 투자는 지속한다.
파운드리는 자회사로 두기로 했다. 분사 이후에는 기업공개 과정을 거쳐 외부 투자금을 확보할 방침이다. 펫 갤싱어 CEO는 이번 실적설명회에서 "인텔 파운드리를 독립 자회사로 설립할 예정"이라며 "향후 독립적인 자금 출처를 평가하고 인텔 파운드리 및 제품 자본 구조를 최적화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파운드리 자회사를 위한 신탁 이사회를 구성중이며 여기에는 반도체 전문성을 갖춘 독립 이사가 사외이사로 포함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삼성과 같이 파운드리 투자는 속도 조절하는 대신 초미세공정 경쟁은 이어간다. 인텔은 실적설명회 자리에서 파운드리 18A(옹스트롬, 1.8nm급)공정 제조 준비를 완료하고 내년부터 양산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재차 강조했다.
옴스트롬은 100억 분의 1m로, 기존 초정밀 반도체 공정인 나노미터보다 더 세밀한 단위의 표기다. 나노미터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의미하는 단위로, 선폭이 좁을수록 소비전력은 줄고 처리 속도는 빨라진다. 이르면 내년부터 1나노 양산이 시작되는 셈이다.
이날 인텔은 지난 분기 밝혔던 아마존 웹서비스(AWS)와의 전략적 협업 외에도, 컴퓨팅 중심 기업으로부터 18A 웨이퍼 설계 수주 2건을 추가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파운드리 고객군을 넓혀 사업 정상화를 이뤄내겠다는 목표다.
'선택과 집중'으로 선회한 인텔과 삼성이 파운드리 적자 기조를 끝내고 반등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텔의 경우 18A 수율을 끌어올리는 것 외에도 분사-기업공개 수순을 통해 어느 정도의 외부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대형 고객사 유치 역시 인텔 파운드리 수명을 결정지을 핵심 요인이 될 전망이다.
'큰 손' 유치는 삼성에게도 절실한 과제여서 다양한 응용처를 겨냥할 것으로 보인다. 빠른 성과를 위해서는 오픈AI, 메타, 구글 등 자사 AI 가속기를 만들려고 하는 잠재 고객군과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의 막대한 보조금을 기대한다거나, 미 빅테크들이 선뜻 손을 내밀어오는 구조가 아니라면 완전히 새로운 고객군을 확보하겠다는 '신생태계 구축' 전략으로 선회해야 승산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TSMC를 능가하는 파운드리 기술을 당장 보여줄 수 없다면, 자사용 AI 가속기를 만들려고 하는 잠재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 새 고객이 절실한 삼성과 자사 입맛에 맞춘 제조사가 필요한 AI 기업 양측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