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음모론' 신빙성 퇴색에 '이재명 방탄론' 재점화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입력 2024.09.06 06:30
수정 2024.09.06 06:30

민주당, '계엄 제보 들어와' '들은 바 없는데' 혼선

양문석 "軍 장성, '나무위키' 정보삭제" 황당 주장

친명계 좌장 정성호 "제보라는 건 상상력 아닌가"

韓 "국정이 장난이냐" 추경호 "방탄 굴레 벗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급해 논란을 산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준비설'이 점차 이 대표 방탄을 위한 여론 선동용 '음모론'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주장에 구체적 근거를 대라는 여권의 추궁에 '정황 제보'를 앞세우더니, 급기야 민주당 내에서도 '제보를 들은 적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괴담 정치'의 중단을 촉구하며 민주당을 향해 "이재명 방탄 정당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라"고 당부했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이 불을 붙였고 이 대표가 나흘 전 11년 만의 여야 대표회담에서 기름을 끼얹은 계엄령 준비설에 대해 당 지도부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추가적인 의혹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해야할 이야기가 있으면 추가 언급이 있겠으나, 지금 국회에 민생문제가 산적한데 그런 것(계엄령 준비설)만 계속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 대표도 전날 응급의료체계 붕괴 사태를 점검하기 위해 고려대안암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계엄설 제기에 국민적 불안이 커진다'는 지적을 받고 "계엄 얘기는 적절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나중에 하기로 하자"며 즉답을 피했다.


계엄령 준비설의 새로운 근거가 온라인 지식 사이트 '나무위키'에서 드러났다는 당 일각의 황당무계한 주장까지 등장했다. 나무위키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백과사전식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지식정보 사이트로 불특정 다수가 직접 내용을 추가하고 수정할 수 있다.


지난 22대 총선 경기 안산갑에 출마한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기 안산시 선거사무소에서 당시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이와 관련, 양문석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4월부터 대한민국 국군 장성 130명이 '나무위키'에서 본인들의 정보를 삭제하거나 삭제를 위한 임시 조치를 취했다"며 "이런 의혹들이 단순히 지나가는 소문이 아닌 '계엄'과 같은 비상사태를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양 의원은 대학생 딸이 2021년 4월 허위 문서로 새마을금고에서 받은 사업자 대출 11억 원을 본인과 아내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대부업체로부터 빌린 돈을 갚는데 사용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양 의원은 해당 아파트를 매입가격보다 9억6040만 원 낮은 공시가격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재산을 신고한 혐의도 받는다.


이처럼 당 지도부가 군불을 땐 계엄령 준비설 논란에 황당한 의혹제기까지 이어지며 동력을 잃어가는 상황은 당초 주장의 근거가 '정황'에 의존해있을 뿐인데다, 당내에서도 '직접 증거를 들은 바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5선 중진 안규백 의원은 YTN라디오에서 "비상식적 국정운영과 낮은 대통령 지지율 속 계엄 논란이 나온 것 같다"면서도 "관련한 제보는 들은 적 없다"고 밝혔고, 김한규 의원은 KBS라디오에서 "국방 관련 업무를 하지 않는 의원들에겐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서 당에서 어떤 근거와 제보를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상황"이라며 "계엄에 대해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당이) 벌써 수사 고발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으로 꼽히는 5선 중진 정성호 의원이 '제보는 상상력'이라고 주장해 논란은 확대될 전망이다. 정 의원은 CBS라디오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정도의 얘기를 왜 못 하느냐. 본인들이 '계엄할 의지도, 의사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다'라고 얘기하면 되는 것"이라며 "그 제보라는 게 대개 그런 상상력인 것 아니겠느냐. 그걸로 이 문제를 자꾸 확대하는 게 그 자체가 문제"라며 책임을 정부·여당에 돌렸다.


지난 22대 총선 경기 안산갑에 출마한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기 안산시 선거사무소에서 당시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같은 주장에 '국정이 장난이냐'라며 계엄설 주장 배경에 대한 정보 공개를 거듭 촉구했다. 한동훈 대표는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성호 의원은 '정치인이 이런 얘기도 못 하냐' 이렇게 얘기했다"며 "일종의 이런 얘기 아닌가. '장난도 못 치냐' 이런 정도의 말이다. 국정이 장난이냐. 민주당이 한 얘기를 보면 정말 아무런 근거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내뱉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일갈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얼마 전부터 민주당은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가짜 뉴스까지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며 "이재명 대표께 요청드린다. 민주당이 방탄 정당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놓아달라. 그것만이 우리 정치와 국회가 정쟁에서 벗어나 정상화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계엄령은 헌법 77조에 따라 전시·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질서유지가 필요할 때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치안·사법권을 유지하는 조치로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건의하는 구조다. 계엄을 선포하면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보하고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실제 계엄령이 선포되더라도 현재 국회 의석 구조상(전체 300석 중 민주당 170석·조국혁신당 12석·진보당 3석·기본소득당 1석·사회민주당 1석 총 187석) 범진보 진영이 계엄령을 해제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계엄을 선포하기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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