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헬기 띄울 힘 있는 부모 아니라서 너를 죽인다" [기자수첩-사회]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입력 2024.06.27 07:17
수정 2024.06.27 09:05

중대장 "완전군장 직접 지시 않았다다" 취지의 주장…구속 앞두자 유족에 급히 연락

훈련병, 40도 넘는 고열 시달리자 "너 때문에 뒤에 애들 못 가고 있잖아" 겁박도

피해자 모친, 사건 발생 후 상황 편지에 적시…검찰, 모든 증거 확보 후 기소해야

공명정대하고 신속한 수사 이뤄져야 유족 승소할 수 있고 민사 소송도 가능

지난 달 30일 오전 전남 나주시 한 장례식장 야외 공간에서 얼차려 중 쓰러졌다가 이틀만에 숨진 훈련병에 대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훈련병에게 가혹한 얼차려(군기훈련)를 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육군 12사단 중대장과 부중대장이 구속됐지만, 대중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숨진 훈련병 어머니가 "아빠, 엄마가 응급헬기를 띄울 힘 있는 부모가 아니어서 너를 죽인다"며 눈물을 삼킨 것을 두고, 네티즌들은 검찰을 향해 "유족만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수사기관은 수사를 신속하게 하지 않고 뭐하는 거냐"고 질타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의 신동일 영장전담 판사는 지난 21일 업무상과실치사와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된 중대장은 얼차려 과정에서 군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완전군장을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은 완전군장이 아닌 '가군장' 상태로 얼차려를 지시했으며, 훈련병이 쓰러진 이후에야 완전군장 상태로 얼차려가 이뤄졌다는 점을 알았다는 것이다.


유족에 따르면 중대장은 훈련병이 쓰러진 뒤 어머니와 전화할 때도 죄송하다는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빈소가 차려졌을 때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구속영장 청구를 앞둔 시점에 갑자기 어머니에게 연락해 "찾아뵙고 싶다"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사죄 연락 한 번 없던 그녀가 수사가 본격화되자 유족에게 연락을 취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대다수 법조인은 그녀의 행동을 "구속 위기를 피하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뛸 수도 없이 굳은 팔다리로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며 얕은 숨을 몰아쉬는 피해자에게 중대장이 처음 한 명령은 "야! 일어나 너 때문에 뒤에 애들이 못 가고 있잖아!"라고 한다.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이 치미는 와중에도 훈련병 모친은 사건 발생 이후의 상황을 모두 편지에 적시했다. 중대장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설 검찰은 이 모든 증거 자료 하나하나를 모두 확보해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중대장의 휴대폰, 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지금 피해자 부모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이들의 방패막이 되어줄 검찰이 유일하다. 검찰이 공명정대한 수사를 끝마쳐야 이를 바탕으로 소송이 진행될 것이며, 형사 소송 결과를 바탕으로 유족은 중대장을 상대로 한 민사 소송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병 모친은 편지 말미에 "국가의 부름에 입대하자마자 상관의 명령이라고 죽기로 복종하다 죽임당한 우리 햇병아리, 대한의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고 했다. 국가의 부름에 응답하다 억울한 주검을 맞이한 청년을 위해 검찰이 신속한 수사로 응답해줄 차례다.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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