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에 한 명씩 사망하는데…있으나마나한 데이트 폭력 법적 장치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4.05.13 07:11
수정 2024.05.13 07:11
또다시 잔혹한 데이트 폭력 범죄…앞길 창창한 여성, 남자친구 흉기에 목숨 잃어
지난해 데이트 폭력 검거 피의자 1만3939명…2020년 8951명보다 55.7% 증가
중대한 데이트 폭력 범죄 막을 법적 장치 미비…효율적 대책도 마련되지 않아
법조계 "초반에 가해자 접근 못 하게 막고…위반하면 바로 수감하는 등 엄정 대처해야"
"너는 나중에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냥 헤어져. 절대 이상한 생각 하면 안 된다"
그저께였다. 기자와 함께 출근하던 어머니가 '강남역 여친 살해 의대생' 기사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것이라 대답하면서도, 어머니가 무엇을 우려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또다시 잔혹한 데이트 폭력 범죄가 발생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 여성이 남자 친구의 흉기에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아직 해가 하늘에 높이 떠 있던 오후 5시, 서울 강남역에서 벌어진 잔인한 살인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알려진 후 그토록 많은 논의가 이뤄졌건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데이트 폭력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3939명에 달한다. 단순히 계산하면 하루에 38명 이상이 데이트 폭력 범행으로 검거된다는 의미이다. 2020년(8951명)과 비교하면 오히려 55.7% 증가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언론 보도된 사건을 분석해 지난해 최소 138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연인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됐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적어도 3~4일에 한 번꼴로 데이트 폭력에 의한 살인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여전히 중대한 데이트 폭력 범죄를 막을 만한 법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중대한 데이트 폭력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한데 공백 상태"라고 강조했다. 서울 한 대학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그동안 데이트 폭력 범죄에 대해 이런저런 대처를 했다고 해도 사실 본격적으로 효율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중대한 데이트 폭력 범죄를 조금이나마 더 실효성 있게 예방하기 위해서는 더욱 엄정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데이트 폭력뿐만 아니라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 등 감금·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범죄는 초반에 가해자를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하는 경우 바로 유치장에 수감하는 등 엄중하게 대응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가해자와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신고하면 더 큰 보복을 당할까 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초반 단계에서 신고가 접수됐을 때 확실하게 피해자를 보호해 줄 필요도 있다"고 부연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오판의 가능성이나 국가권력 남용의 폐해를 생각하면 강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범인이 명백하고 범죄 내용이 참혹하며 피해가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엄정한 처벌을 통해 형벌의 일반예방적 효과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데이트 폭력 범죄 가해자들은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소유물이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걸 참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끔찍한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가해자 스스로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면 결국 법 제도적인 측면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또 언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다. 범국민적 차원의 논의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