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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이 다시 부른 밀양 성폭행 사건 [기자수첩-사회]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입력 2024.06.10 07:03 수정 2024.06.10 07:03

2003년 밀양서 집단 성폭행 사건 발생…1년 간 협박 및 폭행 수십차례 지속

가해자 44명 대부분 보호처분·소년부 송치…처벌 없는 솜방망이 판결 '공분'

사건 재조명되자 가해자 신상공개 확산…사적 제재, 2차 가해 우려도 야기

흉악범, 10대도 무관용 처벌해야…어처구니 없는 판결, 사법 불신 불러올 것

밀양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한공주' 스틸컷.ⓒ네이버 영화 캡쳐

2003년 벌어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이 최근 한 유튜버를 통해 공개되면서 비판 여론이 다시 들끓고 있다. 40명이 넘는 가해자들 중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사법 불신은 법 테두리를 벗어난 사적 제재의 기폭제가 됐고 연이은 가해자 신상 공개에 다수 국민이 호응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꿈 많은 10대 소녀의 삶을 망가뜨린 참혹한 사건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6월 피해자 A씨(당시 14세)는 온라인 채팅을 통해 박모(당시 17세) 씨를 알게 돼 연락을 주고받다 2004년 1월 밀양에서 만났다. 이미 6개월간 채팅으로 알고 지내 심리적 경계심을 푼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박씨와 만났고 끔찍한 범죄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A씨는 이때 박씨를 비롯한 40여 명에 이르는 무리들에게 처음으로 집단 성폭행을 당했으며 이들은 둔기로 A씨를 폭행하고 성폭행한 뒤 이를 캠코더로 찍어 그녀에게 인터넷에 영상을 퍼트리겠다고 위협했다.


2004년 11월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집단 성폭행, 금품 갈취, 불법 촬영 등 끔찍한 범죄가 이어졌다. 집단 범죄에 가담하는 인원의 수는 점점 늘어났고 이들은 A씨가 요구를 거부하면 재학 중인 학교나 A씨의 친부모에게 전화해 불이익을 주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장기간 지속된 가해자들의 요구와 협박에 A씨는 약 1년 간 자신의 피해를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수사가 시작됐고 검찰은 2005년 4월 성폭행에 직접 가담한 10명은 기소하고 20명에게는 보호 처분을 내려 전과가 남지 않는 소년부로 송치했다. 나머지 14명 중 13명은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1명은 다른 사건에 연루돼 창원지검으로 이송됐다. 기소된 10명마저도 법원에서 소년부 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가해자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죗값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 신상을 공개했다가 영상을 모두 삭제한 유튜버가 지난 8일 다시 신상 공개에 나섰다.ⓒ유튜브 캡

십 수년 뒤 이러한 사실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자 국민들의 분노는 가해자 뿐 아니라 당시 사건을 맡았던 수사기관과 법원으로 향했다.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사법부는 거센 질타를 받았고 일부 유튜버는 정의 구현을 대신 하겠다며 가해자들의 신상이 담긴 영상과 게시물을 제작해 공개했다. 파장은 일파만파 커져 신상이 공개된 가해자 중 일부는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모 유튜버는 피해자로부터 직접 받았다며 지난 8일 사건 내용이 담긴 판결문 일부를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이버 자경단을 자처하는 그들의 행동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정확히는, 가해자가 죗값에 걸맞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현실에 대한 분노는 십분 이해한다는 뜻이다. 다만 피해자도 원치 않는 사적 제재는 명예훼손 등 2차 가해 혹은 또다른 애꿎은 피해자를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에 필히 경계해야 한다. 사법부가 먼저 제2, 제3의 밀양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법 시스템을 촘촘하게 정비하고 10대라도 흉악범죄자라면 철저한 수사를 거쳐 예외 없는 무관용 원칙으로 처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 법감정에 맞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 계속된다면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은 분노의 씨앗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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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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