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 '공천 학살' 현실화됐다…이재명 '시스템 공천' 강조 무색

김은지 기자 (kimeunji@dailian.co.kr)
입력 2024.02.21 00:30
수정 2024.02.21 00:30

박용진·윤영찬 하위 10% 통보 받고

친문 의원들도 회동해 대응책 강구

李 "평가에 사감, 친소관계 작동 불가능

친명과 반명 나누는 것은 갈라치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박용진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경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에 비명(비이재명)계가 잇따라 포함되면서 '사천(私薦)' '비명 공천 학살' 논란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당내 반발이 거세지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불가피한 논란'이라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는데, 시스템 공천에 대한 불신은 이미 극에 달한 모습이다.


하위 20% 통보를 받은 의원들은 탈당 선언과 재심 신청을 하는 등 당 지도부를 향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앞서 김영주 국회부의장의 탈당 선언 이후 추가 탈당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친문(친문재인)계 의원들이 비공개 회동을 이어가는 등 집단행동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일 비명계 박용진 의원, 윤영찬 의원은 각각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으로부터 '하위 10%' 대상자로 통보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당의 '사당화 위기'를 꼬집기도 했다. 민주당은 전날부터 의정활동 평가 하위 20% 의원 31명을 대상으로 개별 통보를 시작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비명계로 알려졌다.


하위 20%에 포함될 경우 경선 득표율 중 20% 감산을, 하위 10% 미만에 포함되면 30% 감산을 받는다. 하위 10% 미만에 포함되는 것은 '컷오프(공천배제)'에 준하는 수준이다.


이날 박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당에 남아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단 한 번도 권력에 줄 서지 않았고 계파정치·패거리정치에 몸을 맡기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오직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만을 바라보고 온갖 어려움을 헤쳐왔고, 공정과 원칙이 아니면 의정활동에서도, 정당 활동에서도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고 했다.


박 의원은 "그래서 아시는 것처럼 많은 고초를 겪었다"며 "오늘의 이 모욕적인 일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회견 직후 기자들을 만나선 "당대표 경선,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이 이렇게 평가받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긴 하지만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 의원은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2022년 당대표 경선에서 이 대표와 경쟁을 펼친 바 있다.


앞서 당내 혁신계 그룹 원칙과상식(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이 당을 떠날 때 함께 탈당하지 않고 잔류했던 비명계 윤영찬 의원도 '하위 10%' 통보로 '잔류의 댓가'를 돌려받았다.


윤 의원은 "비명계 공천학살과 특정인 찍어내기 공천은 표적이 된 당사자에게만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며 "지금 일어나는 밀실과 사천, 저격 공천과 배제의 정치는 민주당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며 윤석열정권에게 총선 승리를 헌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하위 10%'는 경선 득표율에서 30% 불이익을 받고 상대에 비해 두 배의 득표를 해야만 이길 수 있는 수준의 불이익"이라면서도 "멈추지 않고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회견 직후 '하위 10%에 포함된 이유를 어떻게 보느냐'란 질문에 윤 의원은 "이재명 대표에게 질문해달라"고 되물었다.


전날에는 '하위 20%' 통보를 받은 김영주 부의장이 "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당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하고 상징적인 사례"라며 탈당을 선언했다.


공개적인 반발로 당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홍영표·전해철·송갑석·윤영찬·박영순 의원 등은 비공개 회동을 갖고 최근 당내 상황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들은 이튿날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공천 학살' 현실화와 관련해 모아진 의견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내부의 '시스템 공천'은 이미 형해화(形骸化) 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나, 당 지도부 사이에선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정당' '공정한 경선 기회'라는 단어가 여전히 나오는 상황이다.


공관위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당사에서 진행된 비공개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하위 20% 통보 반발에 대해 "안타깝다. 그분들이 어찌 됐든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하니까 공정한 경선 기회를 반드시 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당내 계파갈등 고조에 따른 대응책으로는 "공천 과정에서 시끄럽고 이견이 있을 수 있는데 올바른 공천을 위해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며 "분열이 더 진행되지 않도록 (공관위가) 중심을 잡고 잘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재명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당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비명계 공천 현실화에 대해 "민주당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정당"이라며 "선출직 평가에서 사감이나 친소관계가 작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혁신공천은 피할 수 없는 말 그대로 가죽을 벗기는 아픈 과정"이라며 "하위 평가자들의 당연한 불만을 내부 분열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이를 두고 친명과 반명을 나누는 것은 갈라치기"라고 덧붙였다.

김은지 기자 (kimej@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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