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부담·소비자 불편…재활용 정책 재설계 할 때 [尹정부 민생현안]
입력 2023.11.06 07:00
수정 2023.11.06 07:00
제도 안착 못 시킨 컵 보증금제 이어
1년 연기한 일회용품 규제 논란 여전
대책 없는 연기는 환경정책 퇴보 낳아
“환경부, 계도 기간 고민 없었다” 비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녹색산업 진흥을 위한 다양한 환경 규제 합리와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포함한 순환자원 7종에 관한 폐기물 규제 면제를 추진키로 했다. 이들 자원의 재활용을 통해 희소금속 등 공급망을 강화하는 한편 탄소중립과 순환경제 조성에 힘을 보탠다는 계획이다.
속도를 내는 산업 분야 재활용 규제 개혁과 달리 일상과 관련한 재활용 정책은 다소 갈피를 못 잡는 형국이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나 편의점 등에 적용 중인 일회용품 사용규제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20년 만에 재추진…한 차례 연기 후 사실상 ‘폐지’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는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판매할 때 300원의 보증금을 받고 컵을 반환하면 해당 금액을 돌려주는 제도다. 환경부는 2002년 패스트푸드 7개 업체, 커피전문점 24개 업체 등과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협약을 맺고 일회용 컵 보증제를 추진했다가 2008년 3월 폐지한 바 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지난 2020년 5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난해 6월부터 전국에서 다시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제도 시행 직전에 준비 부족과 업계 부담 등을 이유로 환경부는 제도 시행을 6개월 연기했다. 12월 시행 당시에는 제도 적용 범위를 전국에서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자치시로 축소해 환경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약 9개월간 제주도와 세종시에서 시범 운영한 결과 환경부는 소상공인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2025년 제도 시행을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두 차례 시행 연기에 이어 형식도 의무에서 자율로 바뀜에 따라 환경단체와 야당에서는 사실상 제도 폐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상인과 소비자 모두 불편을 호소한다. 상인들은 제도 운용에 필요한 경비와 인력, 시간 손실이 경제적 손해로 이어진다고 하소연한다. 소비자 또한 반납 절차의 불편함을 이유로 제도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입법조사처는 앞서 2002년 컵 보증금제 실패 주요 원인에 관해 적용 매장이 적고 교차반납 어려움으로 컵 회수율이 30% 수준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졌고 진단했다. 더불어 소비자가 찾아가지 않은 보증금이 업체 수익으로 돌아감에 따라 소비자 협조를 끌어내기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대상 가맹점·교차반납 확대로 실효성 키워야
이를 바탕으로 입법조사처는 이번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개선 방안을 제안하면서 대상 가맹점 확대를 주문했다.
입법조사처는 “커피전문점에서 발생하는 사용 후 음료 컵은 생활폐기물 중 하나로 지자체 플라스틱 폐기물 종합계획과 연관돼 있어 생활폐기물로 버려지지 않고 컵 보증금제를 통해 별도로 회수, 재생 원료로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대상 가맹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회용 컵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차반납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현재 일회용 컵 반납은 음료를 구매한 동일 브랜드 매장에서만 반납이 가능하다”며 “이마저도 커피전문점 면적이 작거나 무인 매장인 경우에는 반납 의무가 없다”고 꼬집었다.
다만 가맹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차 반납에 따른 부가적인 업무에 관해서는 취급수수료 등 정부 지원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가맹본부 책임 강화도 주요 과제다. 현재 보증금 대상 사업자는 가맹본부와 가맹점이다. 가맹본부는 기존 음료 컵과 함께 조폐공사로부터 받은 스티커를 컵과 가맹점에 보급하는 역할만 한다는 게 입법조사처 판단이다.
반면 가맹점은 가맹본부로부터 음료 컵과 스티커를 받아 붙이고 소비자에게 음료를 판매·반환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가맹본부는 가맹점에 스티커가 인쇄된 컵을 공급하거나 스티커를 부착한 컵을 공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컵 공급 의미를 ‘소비자에게 음료를 담아 내놓을 수 있는 상태의 컵을 제공한다’는 영역까지 책임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 권한 부여해 제도 안착 지원 필요
제도 목적을 분명히 회수 대상 컵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입법조사처는 “보증금제도 목적은 경제적 유인책을 통해 (일회용 컵) 회수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단일재질 컵을 배출하도록 해 고품질로 재활용하기 위함”이라며 “보증금 컵이 종이와 플라스틱이 혼용돼 있어 배출 단계부터 단일재질로 별도 배출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현재 혼용 사용 중인 플라스틱 일회용 컵 재질을 통일하거나 별도로 인증 체계를 마련해 재생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회용 컵 사용 매장을 컵 보증금 대상 매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현재 다회용 컵에 사용하는 재질은 폴리프로필렌(PP)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PET다.
PP 재질 다회용 컵과 PET 재질 보증금 컵이 같은 지역에서 혼용·배출·수거되면서 재활용 공정에 뒤섞여 투입된다.
입법조사처는 “다회용 컵 재질을 플라스틱이 아닌 재질을 사용하도록 하거나 다회용 컵 매장을 컵 보증금 매장으로 전환을 유도해 보증금 제도 체계를 소비자가 혼동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일회용 컵 처리를 일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만큼 책임과 권한 부여도 필요하다고 했다. 입법조사처는 “컵 보증금 제도에 참여하지 않는 대상 매장에 과태료 부과도 지자체가 수행하고 있다”며 “보증금 제도 책임과 권한을 지자체가 구현할 수 있도록 환경부 차원 표준조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회용품 사용, 제각각 규제에 일선 혼란
오는 23일 계도기간이 끝나는 일회용품 규제는 제각각인 규제 탓에 편의점 등 일선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식당에서 일회용 컵·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고 1년 간 계도기간을 가졌다.
오는 24일 계도기간이 끝나면 매장 내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를 사용할 수 없다. 일회용 종이컵도 마찬가지다. 편의점에서는 일회용 봉투를 무상 제공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자영업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규제라는 측면에서 불편도 문제지만 명확한 지침이 없어 일선에서는 소비자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플라스틱 빨대 대신 생분해 빨대를 사용해도 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쑤시개 사용도 마찬가지다. 식당 내 유료 커피 자판기가 규정을 위반하는 것인지 자영업자들은 혼란스럽다.
이런 문제를 의식해 환경부 또한 제도 시행을 늦추거나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일 자영업자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듣는 자리에서 “소상공인 부담은 덜고 현장 수용성은 높인 일회용품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 시행 연기가 정답이냐는 점이다.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환경을 생각한다면 마냥 늦출 수 없다는 게 환경단체 주장이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스타벅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에서는 이미 플라스틱 빨대 및 일회용 컵 등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개인이 스스로 규제에 알아서 대응해야 하는 소상공인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계도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며 “정부는 1년 간의 계도기간 동안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정부가) 아무 대책 없이 손만 놓고 있다가 계도기간 종료는 다가오고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덜 수 있는) 대책은 없고 하니 연장하는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그는 “계도기간 연장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낼 것이 아니라, 제도를 시행하면서 소상공인을 지원할 수 있는 단계적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