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갈라치기' 나선 尹, 北·러 때리고 中엔 '협력 손짓'
입력 2023.09.08 02:03
수정 2023.09.08 02:06
尹, 中 2인자 리창과 51분간 '한중 회담'
"한일중 정상회의, 빨리 열자" "적극 호응"
EAS선 "북핵 세계 평화 정면 도전…상임이사국 책임 무겁다"
한·필리핀 FTA 체결…인니와 원전·핵심 광물 등 분야 MOU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7일(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일원임에도 거부권을 발동해 추가 대북 제재를 막고, 기존 제재 이행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다만 중국과는 '한·중 회담'을 갖고 '한·일·중 정상회의' 조속한 개최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갖고 "북핵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일 협력 체계는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며 "북한 문제가 한·중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협력하자"고 말했다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현지 프레스센터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윤 대통령은 "북핵은 우리에겐 실존의 문제"라며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중은 공히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질서를 지지하고 있는 만큼 그 전제가 되는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 구축을 위해 협력하자"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이날 한·중 회담에서 "한·일·중 정상회의가 이른 시일 내 한국에서 개최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리 총리는 "적극 호응하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지난해 11월 한·중 정상회담 이후 앞으로 고위급에서 활발한 한·중 교류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며 "시진핑 주석에게도 따뜻한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
리 총리는 시 주석이 윤 대통령에게 보낸 안부를 전달하고 "한국과 중국이 가까운 이웃으로서 먼 친척보다도 가까운 이웃이 협력하고 잘 지내면 훨씬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북한 문제가 한·중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협력하자'고 했을 때 리 총리의 반응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상대방은 시종일관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게 경청했다"며 "돌아가서 검토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리 총리는 이날 오후 3시 25분부터 4시 16분까지 총 51분간 회담을 했다. 윤 대통령은 리 총리가 회담장에 들어서자 영어로 "welcome, prime minister"(환영합니다, 총리님)라며 인사를 건넸고, 리 총리도 영어로 "Nice to see you again"(또 만나서 반갑습니다)이라고 화답했다.
윤 대통령과 리 총리는 전날 아세안+3(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공식 대면했다. 리 총리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약 10개월 만에 만난 중국 측 최고위급 인사다. 중국 권력서열 2위인 리 총리는 시 주석의 '복심'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오전에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East Asia Summit)에선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해 대북 제재 의무 준수를 강하게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중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세계 평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고, 오늘 회의에 참석한 모든 국가를 겨냥하고 타격할 수 있는 실존적 위협"이라며 "모든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제재 결의를 준수해야 하며, 그러한 결의안을 채택한 당사자인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겨냥하면서도, 북한과의 무기 거래 등 군사 협력 논의를 위한 정상회담을 조율 중인 러시아를 향해 재차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전날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국제사회의 평화를 해치는 북한과의 군사 협력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러시아를 정조준했다.
EAS는 역내 주요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협력체로,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총 18개국이 속해 있다. 미국에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일본에선 기시다 후미오 총리, 중국에선 리창 총리, 러시아에선 세르게이 라바로프 외교장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 외교'에도 주력하며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Business Round Table)에 참석해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최대 경제국이자 풍부한 핵심 광물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전기차·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주도하는 우리 기업들과의 협력 잠재력이 높다"며 양국 기업 간 적극적인 협업을 주문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양국이 과감하게 탄소중립을 추진 중인 만큼, 기후 위기 등 환경 문제 대응과 함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원전 분야에서도 협력이 본격화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날 BRT에선 원전, 핵심 광물, 신도시 건설, 보건, 전력 등의 분야에서 양해각서(MOU)와 계약 16건이 체결됐다.
한국 측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구자은 LS 회장 등을 포함한 기업인 19명이 참석했다. 인도네시아 측에선 알샤드 라스지드 인도네시아 상의 회장 등 기업인 17명과 루훗 판자이탄 해양투자조정부 장관, 부디 사디킨 보건부 장관 등이 자리했다.
윤 대통령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필리핀 간 FTA를 체결했다. 필리핀은 전체 품목 중 96.5%를, 한국은 94.8%의 관세를 철폐하는 높은 수준의 개방을 달성하게 됐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자카르타 현지 브리핑에서 "한·필리핀 FTA는 싱가포르·베트남·캄보디아·인도네시아에 이어 아세안 회원국과의 다섯 번째 양자 FTA"라며 "아세안 시장의 91%에 달하는 거대한 FTA 네트워크가 완성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아세안과의 교역은 한·아세안 FTA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교역 규모 2000억 달러가 넘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제2위 교역 대상"이라고 했다.
이번 한·필리핀 FTA 체결로 기존 관세율 5%인 한국산 자동차의 경우 FTA 발효 즉시 관세가 철폐되고, 기존 관세율이 최대 30%인 자동차 부품은 최대 5년 내 관세가 철폐되며, 전기차·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 역시 5년 내 관세가 철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