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플랫폼 규제, 디지털 ‘패권국’ 아닌 ‘패전국’ 만들 것”
입력 2023.08.16 17:41
수정 2023.08.16 17:42
16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간담회...글로벌 디지털 패권경쟁 현황 논의
“강력한 플랫폼 규제는 국내 기업을 고사하게 만들 것입니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16일 서초구 양재동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대회의실에서 ‘글로벌 디지털 패권 경쟁, 대한민국은 없다!’를 주제로 열린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02년 시행된 ‘인터넷 실명제’를 예시로 들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실명제라는 선제적인 규제를 만들었다가 국내 동영상 플랫폼 시장을 미국에 내어주게 된 경험이 있다”며 “세계 최초 선제적 규제는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정부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그대로 벤치마킹하려는 태도를 우려했다. 김 교수는 “유럽은 거대 시장을 무기로 미국 기업에 규제 압박이 가능한 반면, 한국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유럽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경쟁할만한 자국 사업자가 없기 때문에 미국 기업을 겨냥한 강력한 규제가 자국 산업보호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될 수 있다”며 “반면 우리는 경쟁력을 가진 토종 플랫폼이 존재하고 국회에 발의된 대부분의 법안은 우리 기업에 적용될 수 밖에 없으므로 결국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각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국가전략에 맞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유럽은 과거부터 시험이나 인증과 같은 규제를 하나의 산업으로 만드는 것이 굉장히 발전된 지역”이라며 “미국이나 중국은 AI 기술을 혁신적인 서비스로 동작시킨다면, 유럽은 AI 역량 평가를 하나의 산업으로 만들어낸다”고 타국 규제를 벤치마킹할 경우에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규제에만 몰두하고 선진국들의 디지털 패권경쟁에 대한 대책 마련에는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국내 환경에 시야가 고정돼있다”며 “세계 정치의 패턴에 따라 미국과 중국이 국내에 적용하고 있는 준비 현황들을 정확하게 알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빅테크와의 경쟁에 대응하되 자국 이익만을 추구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승주 “다른 국가들과 함께 이익을 추구하는 ‘열린 국익’을 지향해야 한다”며 “모두가 자국이익을 우선하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우며,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므로 한국의 국가전략은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