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지역 토착세력과 연계용?…민생범죄 못막고 무늬만 '자치경찰제'
입력 2021.12.21 05:48
수정 2021.12.20 20:42
올해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 역대 최다 8명…민생범죄, 대표적인 자치경찰 사무
전문가 "외관 바꾸는데만 치중하지 말고 지자체와 자치경찰 사전에 머리 맞대야"
"일선 파출소나 지구대 업무 가중…인력과 예산 확보 시급, 능력·의지 검증 후 경찰 채용"
자치경찰제가 전국에 전면 시행된 지 6달이 지났으나 민생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과 서울 '신변보호 여성 피살 사건' 등 민생 치안을 위협하는 범죄가 잇따르면서 자치경찰제도가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치경찰제도가 본래 취지대로 주민밀착형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사전에 지자체와 머리를 맞대 필요가 있고, 인력과 예산 확보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는 8명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스토킹 신변보호자 살해' 김병찬(35), '여성·공범 연쇄살인' 권재진(52), '신변보호 여성 가족 살해' 이석준(25) 등 3명의 신상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신상공개 된 피의자가 8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신상정보가 공개된 강력범죄 피의자에 비해 4배 늘었고, 신상공개제도 도입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특히, 8명 가운데 7명은 여성과 약자를 대상으로 벌어진 범죄다. 4월 신상이 공개된 김태현(25)은 지난해 11월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여성 A씨를 스토킹하다 A씨의 여동생과 어머니, A씨를 차례로 살해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여성 B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신상이 공개된 김병찬도 B씨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하다 살해했다.
또 최근 인천에서는 층간소음 갈등에서 비롯된 살인미수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달 15일 인천 남동구 한 빌라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위집 거주자 40대 남성이 아래층 일가족을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사건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피해가족과 함께 있었는데도 피해를 막지 못하고 자리를 이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전문가들은 민생범죄에 대한 수사와 예방 권한을 갖고 출범한 자치경찰제의 역할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자치경찰제는 문재인 정부의 검·경수사권 조정 일환으로 지난 7월 출범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범죄를 예방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생활 안전, 교통, 경비 등 지역별 사정에 맞는 주민밀착형 치안 서비스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국토가 좁은데 굳이 자치경찰제를 만들었으면 목적성과 필요성이 달성돼야 한다"며 "층간소음·스토킹·가정폭력·아동학대 등 민생범죄는 대표적인 지방자치 경찰 사무로 분류되는데, 외관만 바꾸는데 치중했지 자치경찰제 측면에서 나오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층간소음 문제의 경우에도 이웃 간 갈등을 중재를 할 수 있도록 자치 갈등 조정위원회가 만들거나, 신축 가구 등에 층간 소음이 방지되는 건물에만 인허가를 해주도록 조례를 보완하는 조치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자치경찰이 사전에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고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성인구가 많은 지역 등 해당 지역 특성에 맞는 아이디어를 발굴해 제도의 취지에 맞게 자치경찰제를 운영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치권력이 수사권 권한을 분산한다는 이유로 만든 자치경찰제가 '있으나 없으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내년 선거와 관련해 지역 토착세력과 연계하려 한다'는 등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치경찰제가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아 대단한 성과가 바로 나오는 단계라기보다 지역에 맞는 치안 수요를 분석해 나가는 과도기적 단계"라면서 "지금 국가경찰, 지방자치경찰, 국가수사본부 3개로 나뉘는 과정에서 역할 분담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이어 "일선에서는 인력이 한정돼 있다 보니 파출소나 지구대의 업무가 가중되는 상황이 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무슨 일을 할 때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경찰 채용 과정에서는 성별을 맞추기보다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