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와 대중문화③] 퀴어 채널 연분홍TV “불편하지 않은 웃음, 새로운 농담 추구”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1.11.16 14:01 수정 2021.11.17 14:18

공동체감각 확장 기여 위해 채널 개설

"최우선 과제는 차별금지정 재정"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소수자 캐릭터가 누군가의 들러리나 특별한 양념을 치기 위한 도구가 아닌, 키 플레이어나 핵심 주축으로 등장하며 더 이상 누군가의 친구나 낯선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성소수자가 차별을 당하고 있는 사건들이 뉴스를 장식한다. 지난해에는 트랜스젠더 신입생의 숙명여대 입학을 둘러싼 논쟁과 성소수자가 방문하는 클럽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진 이태원발 코로나19 집단감염에 많은 사람들이 혐오 표현을 적나라하게 쏟아냈다.


지난 3월에는 군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고 강제 전역당한 변희수 전 하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지난해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법안 통과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동성애에 관련한 문제들이 제기되면 찬반 논쟁이 따갑게 오간다.


그럼에도 성소수자들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제공하며 인식 개선 전선에 있는 이들이 있다.


연분홍치마는 2004년 발족해 다양한 인권침해와 폭력의 현장에서 그것을 기록하고 재가공해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드는 미디어운동 및 인권 운동 단체다. 연분홍치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적인 새로운 감각의 확장을 위해 '애니부터 음악까지, 다큐부터 예능까지! 퀴어 전문 방송국의 야망을 품고 달린다!'라며 2019년 유튜브 채널 연분홍 TV를 개설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이지윤 PD는 "주로 철거민, 빈민, 해고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과 경험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왔다.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통해서 삶의 조건과 차별의 지점은 달라도,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연대의 공간과 의지를 함께 만드는, 그런 공동체적인 감각을 확장하는데 기여하고 싶었다"면서 "플랫폼, 관객의 경험, 제작 방식 등이 숨 가쁘게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 변화는 ‘공동체적인 감각의 확장’에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유튜브에 ‘연분홍 TV’라는 채널을 만들게 됐다"라고 개설 배경을 전했다.


‘연분홍 TV’는 기획-제작-관람에 이르는 과정이 퀴어 공동체적인 순환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PD는 “다시 말하자면, 그동안 성소수자인권운동이 축적해왔던 역사와 경험을 잘 제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이러한 성소수자 공동체적인 감각에 기반해 성소수자들의 인권 이슈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웃음을 만들고 싶었다. 연분홍 TV의 역할을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 농담’을 커뮤니티 밖에서도 소통될 수 있도록 매개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라고 유튜브 채널 연분홍 TV가 가진 색깔을 말했다.


연분홍 TV는 올해 국내 최초 퀴어 시트콤 '으랏파파'를 제작했으며 퀴어 페미니스트들의 힐링 시간 '오후 네시의 요가' , 커밍아웃 콘텐츠를 진행 중이다. 커밍아웃 3부작으로 일컬어지는 '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에 이어 4번째 커밍아웃 시리즈로 ‘너에게 가는 길’을 제작해 17일 개봉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을 마주한 엄마이자 여성들의 성장 서사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으랏파파'는 시즌2가 확정돼 현재 10화까지 진행된 상태로 방영할 채널을 찾고 있다. 또 뒤이은 커밍아웃 시리즈로 퀴어댄스팀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두MTF(여성에서 남성으로 변경) 트랜스젠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


이 PD는 "불편하지 않은 웃음, 새로운 농담. 두 가지가 ‘연분홍 TV’의 중요한 기준이다.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콘텐츠가 결정 기준 중 중요한 포인트다. 새로운 농담을 위해 때로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 한다"라며 "제작 과정 역시 성소수자 친화적인 제작 환경이 될 수 있어야 그 결과 또한 좋다고 느낀다. 만드는 이도, 보는 이도 웃을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는가, 또한 중요한 기준"이라며 콘텐츠를 선정 기준을 설명했다.


‘연분홍 TV’ 측은 사회적으로 성소수자가 즐기는 문화가 차별 없이 지속되기 위한 방향에 대해 최우선 과제는 연내 차별금지법이 재정되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장애·나이·성 지향성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평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의의를 둔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이 차별 금지법을 발의했으나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반발에 부딪쳐 입법이 무산됐다.


이지윤 PD는 "인터넷 공간 속에서도 혐오와 차별은 무수히 반복되고, 공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콘텐츠를 제작함에 있어서 언젠가는 마주할 혐오 댓글에 혹여나 출연진이 상처받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조금 더 다양하고도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저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혐오에 갇히지 않는 시야, 두려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연분홍 TV가 성소수자들을 위한 콘텐츠를 직접 기획, 제작하고 있다면 여성 영화 OTT 플랫폼 퍼플레이는 퀴어 영화를 큐레이션 해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더 인 로', '셔틀런', '연애편지', '그녀의 욕조', '퀴어의 방', '굿마더', '앨리스:계절의 틈' 등 총 35편의 장, 단편이 준비됐다. 최근에는 대구퀴어문화축제의 10년을 기념하고 돌아보며, 우리 사회 퀴어 운동의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퀴어 053'가 업데이트됐다.


퍼플레이 조일지 대표는 "이런 작품들은 성소수자들이 공감하며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퀴어가 내 옆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언제나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소수자의 삶은 현실에서든 창작물에서든 활발히 이야기되지 못하고, 그들의 존재는 쉽게 지워진다. 퍼플레이는 여성 혹은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소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금의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 한다"고 전했다.


이어 “미디어의 힘은 정말 강력하다. 다양한 가치와 존재를 주제로 하는 영화를 보고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느리게나마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라고 강조했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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