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판 뒤집히자 FI '몽니'
입력 2021.10.28 06:00
수정 2021.10.28 09:46
국제기구 중재서 분위기 대반전
쫓기는 FI, 여유 되찾은 신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회사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이른바 풋옵션 분쟁에서 판정승을 거두면서 대립각을 세워 온 재무적투자자(FI)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FI 쪽이 갈등을 국제기구로 끌고 갈 때까지만 해도 신 회장이 아킬레스건을 찔린 듯 보였지만, 막상 결과물을 받고 보니 판이 뒤집히는 형국이 되면서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결국 FI는 신 회장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내며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지만, 이에 대해 교보생명 측은 마지막 몽니를 부리는 모습일 뿐이라고 못 박으며 여유를 되찾은 분위기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2일 교보생명의 FI인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신 회장을 상대로 서울북부지방법원에 계약 이행 가처분을 신청했다. 지난 9월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판정에서 확인된 주주 간 계약의 이행을 요청했으나 신 회장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 회장과 어피너티컨소시엄은 교보생명의 지분과 연계된 풋옵션 계약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여 왔다. 풋옵션은 주식이나 시장 가격에 관계없이 채권, 금리 통화 등을 일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에 매도할 수 있는 권리다.
신 회장은 2012년 교보생명 지분을 매입한 어피너티컨소시엄과 풋옵션 권리가 포함된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9월 말까지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교보생명 주식을 신 회장에게 되팔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교보생명의 IPO는 계속 미뤄졌고, 어피너티컨소시엄은 결국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문제는 당시 교보생명의 지분 가치였다. 어피너티컨소시엄은 평가 기관인 안진회계법인이 교보생명 주식의 1주당 가치를 40만9000원으로 산정했다며, 그에 따른 지분 값을 요구했다. 반면 교보생명과 신 회장은 어피너티컨소시엄이 과도한 풋옵션을 챙기려 한다며 반발해 왔다.
이 가격대로라면 교보생명 주식의 풋옵션을 가진 FI의 지분 가치는 2조원에 달한다. 신 회장 개인이 이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가진 지분을 정리하는 방법뿐이다. 풋옵션 논쟁이 교보생명 지배구조를 뒤흔들 이슈로 평가된 이유다.
◆"주당 41만원 매입 의무는 없어"
국제상업회의소(ICC)는 어피너티컨소시엄의 입장대로 신 회장과 FI의 풋옵션 계약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이 계약을 위반했다고도 판시했다.
그러나 분쟁의 핵심 쟁점인 교보생명의 지분 가치 판단에 대해서는 신 회장 쪽의 손을 들어줬다. 회계법인이 제시한 평가액대로 신 회장이 풋옵션을 이행하게 해달라는 어피너티컨소시엄의 요청을 기각하면서다. 신 회장이 FI에게 약속한 풋옵션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교보생명의 주식 가치를 1주당 41만원까지 쳐줘야 할 의무는 없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이 역전승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FI는 ICC 중재 재판을 시작할 때만 해도 빠르면 1년 안에 일정 금액의 풋옵션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신 회장이 풋옵션 가격을 명확히 하지 않은 점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교보생명은 이에 힘입어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교보생명은 FI의 가처분 신청을 두고 ICC 중재 판정을 왜곡하는 무모한 법률 소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실제로 ICC는 이미 중재에서 다뤄진 사안의 경우 ICC에 다시 추가 소송이나 중재 등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국제 중재는 단심제로 사실상 대법원 판단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어피니티컨소시엄은 교보생명 IPO가 무산돼 풋옵션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거듭해 온 만큼, 추가적인 법적 분쟁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IPO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자신들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