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의 챕터투] 도피하는 이재영·이다영, 인성이 미래다
입력 2021.10.02 07:00
수정 2021.10.02 13:21
진정성 있는 사과와 깊은 자숙 없이 그리스로 도피성 이적
여론 악화 속 국감서도 "국민적 분노 무시한 처사" 비판
다시 한 번 학교 운동부 인성 교육 필요성 절감
“이재영, 이다영 선수가 충분히 반성한 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김연경-김수지의 공백을 채워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이었던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은 둘의 진정성 있는 반성을 전제로 합류를 바랐지만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됐다. 학교폭력 파문으로 퇴출된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는 끝내 사과 없이 해외로 도피성 이적을 감행한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지난달 29일 대한배구협회에 이메일을 보내 둘의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 사실을 통보했다. FIVB는 두 선수가 이적할 그리스 PAOK로부터 이적료 성격의 금액을 받을 계좌 정보를 전달하라는 요청을 대한배구협회가 받아들이지 수용하지 않자 직권으로 ITC 발급을 승인했다.
지난 2월 쌍둥이 자매가 학폭 가해자로 지목되자 이들의 국가대표 자격을 영구 박탈한 배구협회는 ITC를 발급하지 않았지만, 쌍둥이 자매는 그리스 PAOK의 도움으로 뜻을 이뤘다. 이제 이재영-이다영은 FIVB가 승인한 ITC를 근거로 그리스 대사관에서 취업비자를 받아 다음 주 출국한다.
국내에서 뛸 수 없는 상황에서 둘은 도피성 해외 진출을 하게 됐다. 흥국생명에서 뛰던 둘의 몸값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70% 이상 줄었다. 이재영은 지난 시즌 흥국생명에서 6억(연봉 4억 원, 옵션 2억 원)을, 이다영은 4억 원(연봉 3억 원, 옵션 1억 원)을 받았지만, 그리스에서는 1억30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무대를 놓고 몸값을 반토막 이상 떨어뜨리면서까지 그리스로 ‘도피성 이적’을 감행한 쌍둥이 자매의 행보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피해자를 향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깊은 자숙의 시간이 있었다면 둘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었다. V-리그 남자부에서도 학폭 사태가 터졌지만, 쌍둥이 자매와 달리 진심을 담아 수차례 사과한 끝에 용서를 받았다.
둘은 학폭 파문 이전까지 분명 한국 여자배구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 갈 만한 우수한 자원이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면 한국 배구에도 좋았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떠나는 둘을 향한 여론은 더 악화됐다. 국정감사에서도 "쌍둥이 자매의 그리스 이적 강행은 학교 폭력 논란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들렸다.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빠져나간다. 그들에게 이제 배구 선수로서 한국에서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비범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 모두 대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 칭호가 붙을 정도의 대선수가 되느냐 마느냐는 인성에서 판가름 난다. 재능만 놓고 보면 이재영과 이다영을 잃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한국 여자배구로서도 손실이다.
다시 한 번 학생 운동부 때의 인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성적에 매몰된 지도자들이 실력만 보고 덮고 넘어갔던 그릇된 인식과 문화가 불행한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인식의 구조와 체계적인 인성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재발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수한 재능을 지닌 선수 개인은 물론 국가대표팀에도 매우 큰 손실이다. 결국 인성이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