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헬로스테이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이, 현 시대에 주는 울림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1.08.08 09:51
수정 2021.08.08 09:51

뮤지컬 ‘레드북’ 8월 22일까지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난 뭐지?”


19세기 후반 영국 런던, 지독하게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숙녀보단 그저 ‘나’로 살고자 한 안나는 자신을 향해 연신 이렇게 묻는다. 뮤지컬 ‘레드북’은 사회의 비난과 편견을 무릅쓰고 작가로 성장해가는 여자 ‘안나’와 그녀를 통해 존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남자 ‘브라운’의 이야기를 다룬다.


‘레드북’은 2018년 초연 당시 서사, 넘버, 연기, 메시지가 조화를 이루며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그해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3년 만에 돌아 온 ‘레드북’은 새 프러덕션이 합류하면서 배우와 무대 등에 일부 변화를 주면서, 기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더 명확히 전달한다.


사람들은 안나를 찾는 브라운의 질문에 고개를 내젓고, 혀끝을 찬다. 약혼자에게 첫 경험을 고백했다가 파혼 당하고 도시로 건너온 안나를 향한 소문들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이 된 그 시기는, 성희롱을 당한 여인이 오히려 감옥에 갇히고, 여인이 쓴 로맨스 소설은 천박한 포르노로 취급된다.


작품 속의 이야기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 시대와도 동떨어져 있지 않는다. 여성 혐오가 계속되는 현 사회에, ‘레드북’이 주는 통쾌한 울림은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신사의 도리를 외치면서도 여성에 대한 욕망과 권력을 채우고, 지키는 것에 혈안이 된 남성들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반면 안나는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 환경에 굴복하는 법이 없다. 당당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안나의 모습에선,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 희망을 주는 묘한 힘이 존재한다.


극중 등장하는 변호사 브라운은 관객들을 대변하는 ‘듣는 사람’의 대표 격이다. 안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맞서며 긍지와 존엄을 찾고, 내 안의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고, 포장하고, 두려움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브라운이 대변한다. 브라운 역시 안나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나 다운 것’을 깨닫는다.


19세기 안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을 삼키고 당당히 현실 앞에 맞서”라고. 8월 22일까지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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