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일easy] 현대차만큼 달라는 현대트랜시스 노조, 현대차를 멈추다
입력 2024.11.05 12:17
수정 2024.11.05 13:30
매출 2%, 영업익 2배 성과급으로 요구…'인당 5000만원' 현대차 수준
"車생산 기여했는데 다같이 나누자"…현대차‧기아 노조 호응 無
한 달 장기 파업으로 변속기 재고 동나…현대차 울산공장 일부 가동중단
현대차 노조 "변속기 자체생산" 목소리…전기차 전환으로 존재가치↓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포지티브적 해석 : 다 같이 고생했는데 N분의 1로 나누자.
#네거티브적 해석 : 큰 몫을 손에 쥔 자는 나눌 생각이 없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일부 생산라인이 5일 멈췄습니다. 판매도 잘 되고, 노사간 임금 교섭도 타결됐는데 왜 느닷없이 공장이 멈췄냐고요? 바로 부품계열사 현대트랜시스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소비자와 직접 맞닿은 완성차 계열사 현대차와 기아 외에 현대모비스, 현대트랜시스, 현대위아 등 여러 부품계열사들을 거느리고 핵심 부품을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아, 철강 계열사인 현대제철까지 그룹에 속해 있으니 자동차 강판까지 자체적으로 만들어 쓰고 있죠.
물론, 이들 외에도 수천 개의 1‧2‧3차 협력사들이 다양한 부품과 자재를 현대차‧기아에 공급하고 있지만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등 구동계)과 샤시, 칵핏모듈 등 핵심 부품들은 모두 부품 계열사들이 책임집니다.
이런 구조는 비용이나 공급망 관리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긴 합니다만, 단점도 있습니다. 특정 부품 공급을 내부 계열사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계열사들 중 한 곳에서만 문제가 생겨도 최종 생산품인 완성차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죠. 바로 지금처럼 말입니다.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지난달 8일부터 한 달 가까이 줄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4일부로 파업일수가 월 통상영업일수인 20일을 채웠고, 이번주 금요일 즉 8일까지 파업을 한다고 하니 파업일수는 더 늘어나겠네요.
이들이 파업을 벌이는 이유는 (너무 반전이 없어서 허무하게도) ‘돈’입니다. 지난해 매출(11조6939억원)의 2%를 성과급으로 내놓으라고 했는데 안 내놓으니 파업을 벌인 겁니다. 영업이익이 아니라 매출에 비례해 성과급을 달라고 한 게 맞느냐고요? 네, 맞습니다. 계산법이 그렇게 된 이유는 조금 뒤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분 구조상 ‘현대차그룹’이라는 울타리 내에 여러 계열사들이 속해 있긴 하지만, 모든 계열사들은 각각의 기업입니다. 각자 제품을 만들어 팔면서 매출을 올리고, 임직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수익이 나면 재투자하고, 남는 수익은 임직원들에게 나누고, 주주들에게도 배분하는 법인체죠.
그렇다 보니 계열사별로 돈을 잘 버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 근로자들 사이에 편차가 생깁니다. 아무래도 ‘갑’의 위치인 완성차 계열사 현대차와 기아가 ‘을’인 부품 계열사들보다는 돈을 더 잘 벌겠죠.
돈 잘 버는 회사는 임직원에 대한 대우도 좋은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근로자들은 그걸 용납 못합니다. 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에게 회사가 돈을 잘 벌었는지 못 벌었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조합원들이 만족할 만한 교섭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노조 집행부는 2년의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위세 등등한 노조 전임자의 신분을 잃고 현장 근로자로 복귀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만족’의 배경에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게 작용합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라면 어느 곳이건 대우가 박한 곳은 없지만, 그룹 내에 자신들보다 월등히 많이 받는 계열사 근로자들이 눈에 밟힌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그룹 내에서 대우가 가장 좋다는 현대차와 기아조차 서로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이 두 회사는 매년 사실상 같은 조건에 교섭을 타결합니다. 어느 쪽이 차를 더 많이 팔았고 더 많은 매출을 올렸고, 더 많은 영업이익을 거뒀는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기본급 인상률은 물론, 성과급, 심지어 상품권 액수조차 동일합니다. 자사주 지급 수량에는 차이가 있지만, 주당 가격을 계산해보면 이조차 거의 같은 수준입니다. 어느 한 쪽에 단돈 만원이라도 더 줬다가는 다른 쪽 노조가 들고 일어날 것이고, 이듬해부터는 교섭 조기 타결은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입니다.
이렇게 서로 보조를 맞추던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해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습니다. 올해는 그걸 또 경신할 기세입니다. 당연히 임금 교섭도 사상 최고 조건으로 타결했습니다. 기본급‧수당 인상분과 성과급을 더하면 1인당 5000만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그게 다른 계열사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했습니다. 너도 나도 ‘일시금 5000만원은 받아야겠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죠.
현대트랜시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169억원이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15조원, 13조원대 영업이익을 낸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어마어마하죠. 물론 직원 수도 차이가 있지만, 직원 수대로 나눠도 격차는 큽니다.
그런데도 현대트랜시스 노조원들은 현대차‧기아와 대등한 수준의 대우를 원합니다. 사측은 노조에 1인당 평균 2560만원 상당의 성과급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약 4000명의 직원에게 적용하면 1075억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의 거의 대부분이죠. 그런데도 퇴짜를 맞았습니다.
현대트랜시스 노조 집행부가 조합원들을 만족시키려면, 즉 현대차‧기아만큼 받아내려면 여기다 곱하기 2를 해야 합니다. 영업이익의 두 배를 달라는 얘기죠. 기업이 영업을 해서 번 것보다 많은 돈을 근로자에게 지급하려면 빚을 내야 합니다. ‘많이 벌었으니 근로자들에게도 나눠주겠다’는 게 성과급인데, ‘얼마 벌었는지는 모르겠고, 빚을 내서라도 원하는 금액을 내놔라’는 게 현대트랜시스 노조의 요구사항입니다.
물론, 현대트랜시스 노조도 상식이라는 게 있을 텐데 대놓고 영업이익의 두 배를 성과급을 내놓으란 소릴 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매출액의 2% 성과급 지급’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계산법이 나오게 된 겁니다.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전가의 보도’ 파업을 무기로 이 요구사항 관철에 나섭니다. 우리니라는 대체인력 투입 등 사측의 대응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노조가 파업을 하면 꼼짝 없이 공장을 멈춰야 합니다.
노조는 사측과의 교섭 결렬시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하고, 조정 중지 결정을 받으면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조정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노동위원회에서 제풀에 지쳐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립니다.
다만,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파업 일수만큼 임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른 것입니다. 이 때문에 노조 집행부도 함부로 장기 파업에 나서는 경우는 없습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임금 손실이 커지면 조합원들의 반발이 심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예전에는 파업을 벌이더라도 막판 교섭 타결 과정에서 노조 집행부가 사측에 ‘파업에 따른 임금손실 보전’ 이면합의를 조건으로 들이미는 방식으로 조합원들의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로 손실을 입은 사측에 편법으로 다른 명목의 지급 항목을 만들어가면서 일하지 않은 조합원의 임금까지 지급하게 만든 것이죠.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고 합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어기고 임금 손실을 보전해줬다가는 노동법 위반은 물론, 법인에 경제적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 판단돼 업무상 배임죄까지 덮어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트랜시스가 파업을 벌인 게 이날까지 한 달 가까이 됩니다. 집행부에서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를 독려하며 어떤 약속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회사 생산직 근로자들의 월평균 임금이 500~600만원이라고 하니, 그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죠.
현대트랜시스 노조 집행부는 대체 뭘 믿고 장기 파업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일까요. 바로, 앞서 언급한 ‘특정 부품에 대한 과도한 내부 계열사 의존도’입니다.
부품별로 다르지만, 현대차‧기아는 내부 계열사로부터 공급받는 핵심 부품의 경우 한 달 내외 생산분의 재고를 비축해 두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자신들이 한 달 넘게 파업을 벌이며 재고가 소진될 때까지 버티면 완성차 생산까지 차질을 빚는다는 점을 노린 겁니다.
그리고, 실제 결과로 나타난 게 이날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 차질입니다. 현대트랜시스로부터 공급되는 변속기 재고가 동나면서 소형 SUV 코나를 만드는 울산공장 1라인이 이날부터 8일까지 생산을 멈추게 된 것이죠. 현대트랜시스 파업이 더 길어지면 다른 내연기관차 생산라인도 하나 둘씩 가동 중단이 불가피해질 상황입니다.
노사간 이견을 좁힐 방법은 없을까요? 워낙 근본적인 인식차가 첨예해서 절충점을 찾는 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단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우리도 완성차 생산에 기여했는데 왜 호실적의 과실은 현대차와 기아에만 집중되느냐’는 입장입니다. 개별 법인이 아닌, 현대차그룹이라는 큰 울타리 내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데 기여한 성과를 고루 나눠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이는 다른 부품 계열사들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현재 현대차그룹 제조 계열사들 중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외에는 교섭 타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원자재‧부품부터 최종 단계인 자동차를 만들어 팔기까지의 과정에서 나오는 총수익은 한정돼 있습니다. 이를 각 단계별로 고루 나누려면 완성차 계열사들에 집중된 수익을 줄여야 합니다. 계열사들이 현대차‧기아에 납품하는 단가를 올려야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수익이 적어진 현대차‧기아는 근로자들에게 지금처럼 높은 임금을 줄 수 없게 됩니다. 쉽게 말해 현대차‧기아 근로자들에게 줄 몫을 떼서 부품 계열사 근로자들에게 나눠주는 모양새가 됩니다.
현대차‧기아 노조도 이걸 찬성할까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통상 현대차그룹 내 한 계열사에서 노조가 사측과 대립하면 다른 계열사 노조도 이에 동조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죠. 그런데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는 현대차‧기아 노조가 조용합니다. 아니, 집행부만 조용하고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현대트랜시스 노조를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나옵니다.
울산공장 1라인 가동 이전에도 변속기 재고 소진 속도를 늦추기 위해 잔업과 특근을 줄였거든요. 다들 아시겠지만 정규 근무 시간외 근로는 수당이 더 붙습니다. 현대트랜시스 파업으로 이걸 못 받게 됐으니 현대차‧기아 노조원들이 불만을 표하는 것이죠.
시간외 수당 가지고도 등을 돌리는데, 수천만원의 성과급을 부품 계열사 근로자들이랑 나누는 걸 흔쾌히 수용하겠습니까.
심지어 변속기를 울산공장에서 직접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변속기 전문업체인 현대트랜시스를 ‘패싱’ 하자는 것이죠.
이처럼 계열사 노조간 이해관계가 첨예한데 그룹 차원에서 전체 계열사 근로자들에 대한 성과급 배분을 균등하게 컨트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현대트랜시스 노조의 기대와는 달리 현대차 울산공장 일부 생산라인이 멈췄다고 해서 현대트랜시스 사측이 ‘백기’를 들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그룹 차원에서 보더라도 현대트랜시스 노조의 파업 압박에 굴복해 현대차‧기아 만큼의 성과급을 지급할 경우 다른 계열사 노조까지 우르르 들고 일어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선례(?)가 있는데 이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현대트랜시스 노조가 계속 파업을 풀지 않아 변속기 공급이 끊기면 어떻게 하냐고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겠지만 현대차‧기아에게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사 노조의 주장을 수용해 변속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도 있고, 당장 급한 물량은 해외 다른 부품업체에서 조달할 수도 있겠죠.
일감이 사라진 현대트랜시스는 구조조정의 길을 걷겠죠. 어차피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지 않는 이상 장기적으로 인력을 줄여야 할 회사입니다. 주력 제품이 변속기인데, 이건 전기차에는 필요가 없는 부품이거든요. 변속기는 내연기관 엔진의 동력을 전달하고 기어비를 조절하는 부품입니다.
전원 공급과 동시에 최대토크를 내는 전기차에는 모터의 회전수를 조절하는 감속기가 달립니다. 현대트랜시스도 감속기를 생산하긴 하지만, 감속기는 변속기에 비해 구조가 간단하고 크기도 작습니다. 그만큼 작업 수요가 많지 않고, 아웃소싱 전환도 비교적 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가장 고용안정 측면에서 취약한 회사인데, 대체 어쩌려고 일을 크게 벌이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