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시대①] 확장 재정정책…정부와 민간 사이 ‘온도 차’
입력 2021.06.02 07:03
수정 2021.06.01 16:43
경제 지표 회복 놓고 정부-민간 의견 엇갈려
정부 “재정확장 정책 연장해 4% 성장 간다”
민간 “과다 재정은 물가 불안으로 경제 위협”
최근 물가지표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움츠러든 소비심리와 더불어 기저효과까지 고물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물가상승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와 민간에서는 온도차가 뚜렷하다. 정부는 확장적 정책으로 소비심리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간에서는 지금의 고물가는 경제성장이라는 착시효과라는 견해가 높다.
정부는 최근 늘어난 수출과 세계 주요국 경기회복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4%로 상향하는 등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계속되는 재정 투입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가겠다는 포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열린 2021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이 균형추가 돼 가계와 기업 활력을 보완하고 양극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의 확실한 반등과 코로나 격차 해소를 위해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발언 이후 기획재정부도 추가경정예산(추경) 검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에서 추경 검토 여부를 묻자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세수 여건 변화와 재정 보강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답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추경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던 입장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정부와 달리 전문가들은 재정 확장에 따른 경제 성장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정지출이 이미 많이 늘어난 상황에서 계속되는 재정 투입은 재정 건전성은 물론 물가 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은 “정부 재정지출이 마중물이 돼 경제가 성장하면 결국 세금도 늘어나기 때문에 확장재정이 재정 건전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 국가 총수요가 증가하고 국내총생산(GDP)도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늘어나는 GDP 증가분이 투입된 재정지출보다 적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확인된바”라며 “당연히 세수 증가는 투입된 재정에 크게 못 미치고 결국 확장재정은 유동성 공급을 늘려 인플레이션만 가속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확장 재정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
물가와 경제지표에 대한 분석에서도 정부와 경제전문가 사이 견해차를 보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107.39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2.3% 상승하자 당시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 기저효과 때문에 일시적으로 높아진 것”이라며 물가 인상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전망했다.
2일 발표 예정인 5월 소비자물가지수에 대해서도 이 차관은 “작년의 낮은 물가에 따른 기저효과가 더해지면서 2분기 중 일시적으로 2%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연간 기준으로 물가안정목표인 2%를 상회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반면 민간 전문가는 확장 재정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금리 인상 등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30일 금융포커스에 실린 ‘경기 개선 정도에 상응하는 점진적 기준금리 인상의 필요성’ 보고서에서 “뒤늦게 여건 변화를 반영한 큰 폭의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경우 경제침체나 자산시장 경색이 나타나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며 “현재 전망대로 경기 개선세가 이어질 경우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인상해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저효과·착시현상 등 경제지표 반등 이유 다양”
V자형 경제 반등에 대해서도 경제학자들은 원인을 명확하게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일 발표된 5월 수출입동향 결과 수출이 32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하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월부터 5월 누적 수출액이 248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기저 요인을 훌쩍 뛰어넘는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정부는 최근 우리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수출 호조세가 지속할 수 있도록 반도체 등 주력 산업에 대한 종합 지원 패키지 추진, 물류 애로 해소, 중소기업 비대면 수출 지원 등 수출 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민간 전문가들은 지표 사이에 숨어 있는 착시현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5월 수출이 지난해 보다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 5월 코로나19 여파로 수출 실적이 매우 저조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5월 수출액은 349억 달러에 그쳤다. 지난 1년 가운데 가장 낮은 금액이다. 이는 올해 5월 수출 증가폭이 더욱 커 보이는 효과를 낳게 된다. 올해 5월 수출액은 지난 4월과 비교하면 오히려 5억 달러 줄었다.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 실적이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고 정부 입장에서 기대를 품을만한 수치인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지표라는 게 과거와 비교를 통해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것인 만큼 언제든 ‘착시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가 V자 반등할 것으로 예측되긴 하지만 아직 코로나19 불씨가 남았고 내수와 고용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많은 만큼 낙관만 할 일은 아니다”며 “세계 경제가 다시 한번 추락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현재의 경기 반등에 작용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