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정부와 한미동맹: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아저씨”
입력 2021.05.24 08:00
수정 2021.05.24 07:40
진작 한미동맹 중요시하고, 주변국 위협에 공동 대응했어야
반미 주장하다가 국정 경험 쌓게 되면서 그 현실 깨닫기 시작
한국 안보와 경제발전 위하여 한미동맹 중요, 미국 잘 활용해야
(우파와 좌파는 가치중립적이면서 오래부터 사용되어온 용어지만, 보수와 진보는 명칭 속에 가치가 포함되어 있고, 현재의 한국의 실태와 맞지 않다. 진보를 표방하는 집단이 오히려 더욱 수구적인 성향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파와 좌파라는 용어로 구분하고자 한다)
2021년 5월 21일 워싱턴에서는 거창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단독회담과 소인수회담, 확대정상회담까지 3시간 7분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회담 외에도 한국전 참전용사 명예훈장 수여식에도 참가했고, 기자회견에서도 서로 질문기자를 지명하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도 나쁘지 않아서 한미 양국 간에 백신의 기술과 생산을 결합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하였고, 한국이 희망했던 미사일 사거리 제한도 철폐하였으며,미국은 한국군 55만명에 코로나19 백신을 직접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미 양국은 다양한 첨단분야, 기후협약, 해외 원전시장 진출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모처럼 회담다운 한미정상회담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워싱턴에서의 한미정상회담을 마치면서 무척 아쉬운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너무나 환대받고, 너무나 당당할 수 있었고, 그리고 성과도 좋았기 때문이다. “왜 진작 이러한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을까?”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회담을 지켜본 우리 국민들도 과거에 익숙하게 봐왔던 한미 정상회담들의 모습과 유사하다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양국 정상이 시종일관 웃는 모습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내용을 통해서도 서로의 협력 요구에 기꺼이 응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1년을 남겨두지 못한 상태이다. 2020년 5월 9일에 임기가 종료되기 때문이다. 진작 이렇게 한미동맹을 중요시하고, 동맹 차원에서 주변국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면서, 동맹 차원에서 양국이 서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이러한 정상회담을 매년 한번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급하게 트럼프 대통령을 찾아서 북한과의 대화를 촉구하기에 바빴고, 그러다보니 동맹 간의 공동현안을 챙기거나 서로를 배려하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서로가 마음 속으로 불신하면서 마음에 없는 말만 나누고 말았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은 마음 속으로 지난 2017년 12월에 있었던 한중 정상회담과도 비교했을 지도 모른다. 그 때 문 대통령은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반대를 무마하고자 방문하였는데, ‘혼밥’ 논란이 발생하였듯이 중국으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하였고, 야당으로부터 ‘저자세 외교’로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전에 중국에게 사드를 추가로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주권침해로도 해석될 수 있는 약속까지 해야 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사드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전혀 바꾸지 않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협조하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한미동맹에 관하여 좌파정부들이 보이는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심각한 반미를 주장하다가 국정의 경험을 쌓게 되면서 점점 그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 결과 정권이 종료될 즈음에는 확실한 친미노선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모습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권이 종료되고, 따라서 아쉬운 가운데 정권을 끝내야만 했다. 다만, 그 사이에 우리의 안보는 계속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좌파정부가 미국에게 더욱 협조적인 조치를 강구하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처음에는 방위비분담 협상에서 깐깐한 모습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상당히 양보하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해외 한국군 파병 등 미국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도 2021년치 방위비분담을 13.9%나 인상했을 뿐만 아니라 매년 한국의 국방비증가율만큼(평균 6% 정도) 증액해주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미국에게 엄청난 액수의 투자를 약속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그 기업총수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몇 달 전 필자가 미국의 고위 외교관을 만나서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당시 필자가 현 정부의 반미성향을 걱정했더니 그는 대답했다. 미국에게는 한국 정부의 성향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다고. 우파정부는 우파정부대로, 좌파정부는 좌파정부대로 맞춰 나가면 된다고. 당시에는 의아스럽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좌파정부라도 결국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깨닫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히려 손쉽게 미국 지원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파정부는 미국에게 잘해주고자 하지만 좌파국민들의 반미감정을 자극할까봐 오히려 머뭇거리는데, 좌파정부는 좌파국민들을 설득하기가 쉽다고 생각하여 더욱 과감하게 지원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우파성향의 학자들에게 초기 좌파정부의 노선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한국의 안보와 경제발전을 위하여 한미동맹만큼 중요한게 없고, 미국을 잘 활용하는 것이 최선인데, 그 반대로 행동하고, 그래서 한국의 안보가 잘못될까봐 좌불안석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좌파정부가 들어서면 이들은 꼰대로 취급되고, 따라서 현실에 대해서 말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좌파정부는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우파학자들의 입장으로 되돌아오게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틀렸었다고 자인하거나 우파학자들의 충정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중국에 대해서도 현 정부가 상당할 정도로 환상을 깬 것 같다는 점이다. 비록 중국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중국의 행태를 비판하였고, 항행의 자유를 주장하는 미국의 입장에 동의하였으며, 대만의 침공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말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현 정부는 지나친 친중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한국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중국에 아무런 위해가 되지 않는 사드 배치를 빌미로 지금도 한국을 압박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점에서 현 정부가 친중에서 친미로 정책전환을 한 것으로 판단되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다소 과장되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보면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의 일부분을 조금 변형하여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아저씨 (누님을 아저씨로 대체).”
필자는 결혼에 비유하여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손쉽게 설명하고자 한 적이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이라는 결혼을 했고, 중국은 북한과 동맹이라는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각자의 동맹국을 둔 한국과 중국이 안보협력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과장하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사람이 바람을 피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 동안 한국이 ‘균형외교’라는 명분으로 중국의 환심을 사고자 했지만,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4년 정도 균형외교를 한 후 이제야 현 정부는 깨달았고, 즉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바람이 나서 다른 여자를 찾아간 아저씨가 4년 동안 고생만 하고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이 본집에 돌아와서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것을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필자는 느꼈다는 말이다.
한중관계에 관하여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중국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것은 현 정부가 반미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정 내에서 부부싸움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이웃 여자가 유혹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한미동맹이 견고하고, 우리는 한미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 중국은 오히려 한미동맹 균열을 단념한 채 한국과의 경제적 관계에 전념하고자 할 것이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이 최우선임을 분명히함에도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활발한 것과 같다.
그 동안 ‘균형외교’ 차원에서 대통령과 현 정부에게 조언했던 학자와 전문가들은 이 기회를 통하여 반성하기를 바란다. 그 동안 균형외교를 통하여 얻은 게 무엇이었던가? 앞에서 필자가 설명한 것처럼 한국에게는 균형외교가 원래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한 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렇게하면 현 정부의 환심을 살 것 같아서 그랬던 것 아닌가? 그렇다면 ‘곡학아세’ ‘혹세무민’하는 학자로서 반성하고, 자중해야할 것이다.
반미를 선동하던 운동가들도 반성해야할 것이다. 북핵 위협 하에서 한미동맹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본인들도 알고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도 반미를 주창하는 것은 개인적인 이익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현 정부가 한미동맹을 이와 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반미선동을 할 것인가? 제발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기를 바란다.
다만, 이번의 정상회담을 통하여 아쉬었던 것은 북핵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말 대신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쓴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묻고자 한다. 현 정부는 북핵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복안인가? 4년 동안 성공하지 못한 대화와 협상에 의존하는 방식을 지속하겠다는 것인가? 북한이 현 정부와 대화조차 하지 않겠다는데 어떻게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북핵을 해결한다는 것인가? 필자에게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은 채 남은 임기를 넘기고자 하는 의도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다음 정부에게 북핵을 “폭탄 돌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는 곤란한 것 아닌가?
글/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