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소규모 공연장 한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입력 2021.05.23 14:21
수정 2021.05.23 16:50
소규모 공연장 90여곳 중 70%가 일반음식점으로 영업
티켓 판매 수익만으론 소규모 공연장 운영 사실상 불가능
라이브 클럽에 대한 부정적 인식, 공연 전산화 작업 등 대책 마련 필요
코로나19 이후 ‘라이브 클럽’으로 불리는 홍대의 소규모 공연장은 계속해서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어떠한 보호 장치도, 언제쯤 일상을 회복할지에 대한 희망도 없는 상태로.
최근 홍대 일대 소규모 공연장의 폐업이 잇따르고,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 운영 중인 공연장들이 정책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거리두기 2단계 이상에선 아예 공연을 열지 못하다가, 지난 3월말부터 가까스로 공연을 재개했다. 이조차도 업계 관계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얻어낸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있다. 홍대가 ‘공연의 메카’로 불리기까지, 1990년대부터 무려 20여년간 라이브 공연장과 밴드들이 함께 자생하며 문화생태계를 형성해오는데 힘썼다. 그럼에도 이 문화의 특성에 맞는 법령이 없는 것은 여전히 문제다.
일각에선 까다로운 공연장 등록 기준을 완화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이조차도 폐업 길에 내몰린 소규모 공연장에겐 의미 없는 이야기다. 한국공연장협회 이용화 회장은 “있는 공연장도 나가떨어지는 와중에 공연장 등록이, 또 라이브 공연법이 무슨 소용이 있나. 가장 중요한 건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장이 유지돼야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라도 대중이 찾아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상황에선 소규모 공연장이 존폐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게, 폐업의 길에 몰리지 않게 나라에서 심폐소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음레협에 따르면 서울 소재 공연장 90여 곳 가운데 70%이상이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소규모 공연장의 경우 객석이 30석 내외로, 티켓 판매 수익만으론 사실상 공연장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술을 팔아 공연장 운영비용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설물을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야 한다.
현재 라이브클럽을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 운영할 수 있는 근거는 1990년대 문화계가 ‘라이브클럽 합법화 운동’을 통해 힘겹게 얻어낸 것이다. 이전까지 대중예술인은 ‘유흥종사자’로 분류돼 유흥주점이 아닌 일반음식점에서는 2인 이상의 공연을 할 수 없었다. 라이브클럽 관계자들이 합법화를 위해 다양한 움직임을 벌인 끝에 1999년 대중예술인을 유흥종사자에서 제외하는 내용으로 식품위생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규정이 현재까지 라이브클럽 운영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임시방편 성격의 규정 대신 라이브클럽의 고유한 특성을 제대로 반영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네스트나다 김하나 기획실장은 “지난해 8월부터 음료판매를 자체적으로 중단했고, 일반음식점을 폐업하고 공연시설로 등록해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원은 받을 수 없는 것이 현행법이다. 공연장으로 등록되어 있는 곳에 대한 지원만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음식점은 물론이고, 공연시설로 등록된 곳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면서 “그렇다보니 임대료와 인건비는 물론 방역비용으로만 매달 40만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프리즘홀 이기정 대표 역시 “지금까지 많은 공연장이 폐업했고, 며칠 전 또 하나의 공연장이 문을 닫았다. 공연장에 대한 직접지원이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단 하나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여기까지 밀려왔다. 공연장으로 등록하는 절차도 복잡하다. 공연장으로 등록하길 원하는 라이브 클럽에 음레협이 절차를 안내하거나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술을 파는 것은 공연장 운영을 위한 비용마련, 그 이상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라이브클럽협회 김대우 사무국장은 “공연장으로 등록된 곳과 라이브 클럽은 음악 스타일 자체가 다르다. 술을 팔거나, 음료를 팔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라이브 클럽의 색깔을 잃게 된다”고 했다.
이기정 대표 역시 “라이브 클럽만의 문화나, 그곳에서 이뤄지는 네트워킹은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소규모 공연장은 공연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술을 한 잔 기울이면서 아티스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등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라이브 클럽의 고유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가 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내부적으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레이블 불가마사운드 한상태 대표는 “최근 ‘칠순잔치’ 발언이 나왔던 마포구청 사건이 있을 때도 댓글이 좋지 않았다. 이는 라이브 클럽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라이브 클럽이 무명·신인 뮤지션들에게 요람인건 맞지만, 대중의 입장에서도 그럴까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지원을 받고 정부로부터 인디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를 우리가 직접 마련해야 한다. 현재까지 라이브 클럽의 공연에 대한 전산 DB가 없기 때문에 전산화 작업이 필요하고, 소규모 공연장이 무엇인지, 또 이곳에 서는 뮤지션들이 한국 음악의 밑거름이 된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