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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민심르포 ④서북권] "이번엔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 됐으면"

송오미 기자 (sfironman1@dailian.co.kr)
입력 2021.03.22 10:17
수정 2021.03.22 10:40

정권교체 교두보 마련 vs 인물론…팽팽

與 지지층 "LH 사태, 박영선이랑 무슨 상관?"

野 지지층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 망해" 분노

"민주당·국민의힘 둘 다 싫어" 정치혐오증도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흥인지문 앞 횡단보도 ⓒ데일리안 송오미 기자

"문재인 정부가 집값 잡겠다고 몇 년 동안 몇 십 개의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지만 결과는 좋지 않고, LH 사태까지 터졌어요. 이번 보궐선거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추행 저질러서 치러지게 된 거 아닙니까. 심지어 민주당은 당헌까지 바꿔서 후보도 냈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서울 종로구 신영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씨(32·남)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책임'과 '견제'를 강조한 이 씨는 "꼭 야권 단일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21일 오세훈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는 22~23일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를 거쳐 이르면 23일, 늦어도 24일까지는 단일 후보를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인 25일 전에 단일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LH 사태요? 옛날부터 그랬던 게 이번에 터졌겠죠. 솔직히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다 뒤집어 까보면 똑같을 겁니다. 국민의힘 사람들은 더 심할지도 몰라요. 문재인 대통령 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밑에 사람들이 나쁜 짓 하는 걸 대통령이 어떻게 다 압니까?"


서울 서대문구의 한 부동산에서 만난 주부 김모씨(49·여·북아현동)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파문이 서울시장 보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지난해 4·15 총선 때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그는 "대통령은 잘못한 게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터리의 모습 ⓒ데일리안 송오미 기자

데일리안은 지난 19~21일 사흘간 서울 서북권 중 종로구·중구·서대문구의 유권자들을 만나 바닥 민심을 들어봤다. 서북 3구는 서울 표심의 '바로미터'로 꼽아도 될 정도로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각 후보들이 얻은 최종 득표율과 매우 비슷한 득표율을 보인 지역이다.


일례로 중구의 표심을 살펴보면, 중구 유권자들은 2018·2014년 시장 선거 결과에서 최종 득표율에 가장 근접한 선택을 했다. 2018년 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민주당 후보는 52.79%, 김문수 자유한국당(現 국민의힘) 후보는 23.34%,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는 19.55%를 얻었다. 당시 중구에서 세 후보의 득표율은 각각 52.28%, 23.84%, 19.56%였다. 2014년 시장 선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중구의 투표 결과를 보면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現 민주당) 후보는 55.30%, 정몽준 새누리당(現 국민의힘) 후보는 43.84%를 기록했다. 두 사람의 서울시 전체 득표율과 비교하면 1%p 차이도 나지 않는다.


이런 중구 특성에 대해서 박성준 민주당 의원(중구·성동구을)은 "중구는 진보와 보수 비율이 5:5 정도되는 지역"이라며 "서울시 전체적인 여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중구는 기업과 금융의 중심지이자, 종로와 강남을 이어주는 '서울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종로와 함께 '서울 정치 1번지'로 통하기도 했었다.


'정치 1번지' 종로도 보수·진보 어느 한쪽으로 일관된 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동네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게 나뉘는 지역이기도 하다. 종로의 서북쪽에 위치한 평창동·삼청동·사직동·신영동 등은 부촌으로 보수세가 강하다. 반면 동남쪽의 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혜화동·창신동·숭인동 등은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된다. 호남 출신 인구 비중이 60~70% 이상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대문구 동·남부 지역인 연희동·충현동·신촌동·북아현동·홍제동 등을 포함하는 서대문구갑은 정치권에서 서울 민심의 풍향계로 통하는 지역으로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작년 4·15 총선 땐 우상호 민주당 후보와 이성헌 미래통합당(現 국민의힘) 후보가 6번째로 맞붙었다. 전적은 현역 우 의원이 4승 2패로 앞서고 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 대학이 몰려있고 2015년 말부터 북아현동 뉴타운에 3040 세대가 유입되면서 청년층 표심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지역이다. 홍은동·남가좌동·북가좌동 등을 포함하는 서대문구을 지역은 민주당 색채가 짙은 곳으로 분류된다.


4·7 재·보궐선거를 앞둔 서북권 3구 표심은 대체로 "'정권교체를 위한 교두보' 마련을 위해 야권 후보가 서울시장이 돼야 한다"는 의견과 "인물은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제일 낫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특히 여권 지지층에선 'LH 사태'와 서울시장 선거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시각이 꽤 있었다. 다만 지난해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선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올해는 다른 정당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여권에 등을 돌린 주된 이유는 '악화된 민생경제', '부동산 가격 폭등', 'LH 사태' 등이었다.


종로구 창신동에서 야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58·여)는 선거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목소리가 커졌다. 김 씨는 "집값은 계속 오르고 대출은 잘 안 되고, 먹고 살만한 LH 직원들은 내부 정보 이용해서 부동산 투기나 하고 앉아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 망한다. 작년 총선 때 민주당 후보를 찍어준 게 굉장히 후회된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야당에서 서울시장이 나와야 내년에 정권을 바꿀 수 있다"며 "안철수가 더 좋지만 오세훈·안철수 중에서 야권 후보가 되는 사람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창신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신모씨(71·남)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신 씨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부동산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고 경제도 엉망"이라면서도 "박영선이 집값을 올린 게 아니지 않느냐. 또 박영선이 LH 직원들처럼 부동산 투기를 한 게 아니지 않느냐. 그 정도는 우리도 안다"고 했다.


옆에 있던 신 씨의 부인 박모씨(69·여)도 "박영선, 똑똑하고 좋더라. 나는 '당'은 안보고 '사람'만 본다"며 말을 보탰다. 그러면서 "이번 서울시장은 똑똑하고 올바르게 정신이 박힌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 추구하려는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조모씨(55·남)는 "문재인 (대통령) 찍었는데, 올해는 절대로 민주당 안 뽑는다"며"LH 사건도 문제가 많고, 박원순 성추행 사건 때문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그는 특히 박영선 후보의 '재난위로금 1인당 10만원 지급' 공약에 대해 "본인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도 아니고, 국민 세금으로 왜 생색을 내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연희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홍은동 거주민 박모씨(61·남)는 매우 단호한 말투로 "작년 총선 때 민주당 찍었는데 이번에도 박영선 찍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지금 잘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LH 사태'에 대해선 "그런 게 하루 이틀 일이냐"고 했다.


서대문구 신촌동에서 만난 대학생 최모씨(25·남)는 "아직 어느 당 후보에게 투표할 지 결정을 못했다"면서도 "투표 할 정당을 결정하는 데에 LH 사태가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했다. 신촌동에서 만난 대학생 신모씨(23·여)는 "투표는 할 것"이라면서도 "솔직히 끌리는 당이 없다. 국민의힘이 싫지만 그렇다고 민주당한테도 투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중구 신당동에서 옷 가게를 하고 있는 이모씨(56·여)는 "이번에는 당을 좀 바꿔서 찍어보려고 한다. 오세훈이든 안철수든 (야권 단일) 후보가 되는 사람을 찍을 것"이라며 야권 단일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유에 대해선 "지금 국민들 다 죽는다고 난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만 하더라도 장사가 좀 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너무 장사가 안 된다. 빚이 몇천만원이나 생겼는데도 손님이 없어서 가게에서 TV만 보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박 후보의 '1인당 10만원 위로금' 공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에 화가 잔뜩 들어갔다. 그는 "자기 돈으로 주는 것 마냥 인심 쓰는 척 하고 있다. 우리 세금 아니냐"고 비판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양도성 순성길에서 시민과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박영선 캠프 제공

중구 한양도성 순성길에선 박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박 후보는 21일 오전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을 마치고 한양도성 순성길을 걸었다. 이때 박 후보를 발견한 일부 시민들은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 "박영선, 화이팅!", "힘내라" 등의 응원을 쏟아냈다. "오늘 (오후엔) 강남·서초·송파구도 도신다면서요?"라며 박 후보의 일정까지 꾀고 있는 시민도 있었다.


박 후보의 중구 일정에 동행한 박성준 민주당 의원(중구·성동구을)은 이날 데일리안과 만나 "그동안 부동산·야권 후보 단일화 이슈로 뒤덮인 '혼돈의 시간'이었다면, 야권 단일 후보가 결정되면 인물 구도가 형성 돼 '누가 더 서울을 위해 일을 잘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질서의 시간'이 올 것"이라며 "여권 지지층은 결집하고 중도층은 그때부터 본격적인 판단을 시작하면서 여야 후보 간 치열한 싸움이 전개될 것"이라고 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서대문구갑)은 이날 통화에서 "LH 사태가 지금까지 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다"면서도 "선거 막판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또 "선거 승패에 가장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인물 구도'다. 양자 대결로 가면 박 후보가 불리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오세훈·안철수 후보 중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누가 결정되느냐에 따라 시민들이 반응하는 부분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성헌 국민의힘 서대문구갑 당협위원장은 "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공한다면 무조건 야권 후보가 이긴다"며 "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현 정부 실정에 대해 실망하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로 봐선 야권이 승리하는 데 문제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문재인정권의 폭정을 바로 잡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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