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뉴딜펀드 밀어붙이는데…금융당국 '적정성' 따질 수는 있나
입력 2020.08.10 06:00
수정 2020.08.09 21:35
금융위 관망하고 있지만 개인투자자 참여 등에 '난색'
'금융상식' 벗어난 선심성 상품설계에 시장혼란 우려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뉴딜펀드'를 금융당국이 어떻게 손질할지 주목된다. 뉴딜펀드가 정부 재정과 세제 혜택에 기댄 관제펀드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상품 설계와 관련해서는 최종적으로 금융당국과 논의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당국은 뉴딜펀드 상품 설계방식 등과 관련해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당초 금융당국은 정부여당 주도의 뉴딜펀드 추진과 관련해 개인투자자 참여 등에 부정적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부 금융당국 실무자들이 여당 측에 현실적 문제를 거론하며 우려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그만큼 현재까지 드러낸 뉴딜펀드의 설계 자체가 부실하다는 의미다. 실제 뉴딜펀드에 공모로 자금을 모집해 손실 발생에 따른 부실을 재정으로 메우면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 자본시장법 55조는 금융투자상품을 팔 때 손실에 대한 보전이나 이익을 보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 지도부가 자본시장의 심장인 여의도 한국거래소까지 찾아와 뉴딜펀드를 띄운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적정성을 엄격하게 따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뉴딜펀드는 '원금 보장-연 3%대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파격적인 상품이다. 당정은 2025년까지 한국판 뉴딜 사업에 투입되는 160조원의 재원 가운데 10%를 뉴딜펀드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이에 금융권에선 '금융상식'을 벗어난 뉴딜펀드가 시장혼란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사 한 임원은 "펀드에 대한 원금‧수익률 보장이라는 약속은 불완전판매의 전형적 수법인데 정부여당이 이럴 수 있는가"라고도 했다. 부동산에 쏠린 자금의 흐름을 실물 투자로 옮기겠다는 당정의 구상과 달리 시장에선 전례 없는 '선심성 관제펀드'가 결국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당정의 설명대로 원금과 시장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려면 결국 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다. 뉴딜펀드는 각종 인프라 사업과 5G 통신망·데이터 센터 구축 등에 필요한 재원을 개인투자자의 자금으로 충당하고, 발생한 이익을 수익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의 금융상품이다. 손실이 발생할 경우 투자한 원금에 수익률까지 보장해 주려면 정부의 막대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해진다.
"뉴딜펀드 구상 보면 '판타지'에 가까워
자본시장법 넘나드는 위험한 발상"
금융권에선 어떻게 원금에 수익률까지 보장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욱이 만기 설정을 짧게 잡겠다는 당정의 구상과 달리 5G 통신망이나 자율주행차 같은 인프라에 투자하는 펀드는 만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프라 사업이란 게 한두 해에 끝나는 게 아니라 길게는 10년 이상씩 걸리는데다 수익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데 현재 뉴딜펀드 구상을 보면 판타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정작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은행 적금처럼 원금과 수익률을 보장하는 데다 세금도 깎아준다고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주도한 관제펀드가 대부분 정권과 함께 명운을 달리한 것을 지켜본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관제펀드는 수익률 악화 등으로 시장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환경 기업 투자로 관심을 모았던 '녹색펀드'는 수익률 부진으로 현재 대부분의 자금이 이탈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주도한 '통일펀드'도 남북관계 경색으로 최근 1년간 수익률이 고꾸라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소부장(소재·부품·장비)펀드도 코로나19 사태 속에 불확실성이 큰 상품으로 꼽힌다.
금융권에서는 정부여당이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민심 이반을 선심성 뉴딜펀드로 달래려고 하지만, 겹겹의 규제 장치를 둔 금융상품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벌써부터 여권 내에선 "금융투자상품에 원금 보장을 약속한 건 오버였다", "지금이라도 수습을 해야 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펀드는 기본적으로 원금과 수익률을 보장해주지 않는 투자상품인데 원금과 수익률을 보장하면서 판매하면 불완전판매행위 아닌가"라며 "단순히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자본시장법을 넘나드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산업계에 무엇을 요구하면 기업들이 척척해 내듯이 금융‧증권시장에도 통하는 줄 알았던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