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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아이돌 육성의 두 얼굴②] “스타가 되려면 그 정도는 견뎌야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0.07.22 17:51 수정 2020.07.28 08:19

아이돌에 엄격한 잣대 들이미는 사회

인간의 존엄성 무시하는 기획사

ⓒ픽사베이 ⓒ픽사베이

“다시 아이돌 할 거냐고요? 절대요”


어린 나이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고, 한 때 인기를 누렸던 보이그룹 출신 A씨다. 지금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때 못지않지만 다시 아이돌이 되고 싶은지 묻자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최근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아티스트에 대한 소위 ‘멘탈관리’ 시스템이 생겨나고 있다지만, 여전히 아이돌을 바라보는 기획사와 미디어, 대중의 잣대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물론 다시 아이돌을 해서 정상을 찍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체계적인 시스템, 즉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교육들을 받고,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되어 있고, 소속사의 ‘돈벌이’가 아닌 같은 목표를 가진 동행자로 인정해줄 수 있는 전재가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돌’이라는 이름을 가지려면 억압받는 것들이 많다. 특히 정서적인 부분을 케어해주는 곳이 거의 부재하다”고 했다.


실제로 대중은 아이돌에게 상당히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올해로 데뷔 22주년을 맞은 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은 가수 설리가 숨을 거뒀던 당시 SNS에 “많은 후배가 돈과 이름이 주는 달콤함을 위해 얼마만큼의 마음의 병을 갖고 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며 쓴 소리를 냈다. 당시 그는 “더 많은 매체들과 더 많은 연예인들이 생겨나면서 서로에게 강요받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어린 친구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편히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보여주길 바라는 어른들이 넘쳐나고 있다”면서 “섹시하되 섹스하지 않아야 하고, 터프하되 누구와도 싸우지 않아야 하는 존재길 되길 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이돌(idol)의 어원은 ‘신에 근접한 우상’이다. 십수년 전과는 물론 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들에게 신에 준하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조금만 표정이 좋지 않으면 불화설을 제기하거나, 태도 논란을 부추긴다. 정해놓은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려고 하면 어김없이 손가락질을 하고, 채찍질을 하는 식이다. 기획사 역시 이런 여론을 의식해 아이돌에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도록 철저히 교육한다. 이에 아이돌은 늘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들에 불안감을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데뷔와 동시에 큰 이슈를 끌었던 한 걸그룹의 멤버였던 B씨는 “그때는 소속사나 대중들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이돌도 똑같은 사람인데 친구들이랑 있을 대는 나쁜 말도 쓸 수 있고, 좋은 사람들과 편하게 술을 마실 수도 있다. 그런데 주변 지인들만해도 저에게 ‘사람 많은 곳에서 이렇게 술 먹어도 되냐’고 묻는다. ‘아이돌이 이래도 되냐’는 말을 수백 번도 더 들으면서 나조차도 ‘아, 아이돌은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나를 숨기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됐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냈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나 최근 아이돌 육성을 표방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아이돌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고스란히 나타난다. 트레이너들은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언행을 거침없이 해대면서, 울먹이는 연습생에겐 ‘넌 울 자격이 없다’ ‘눈물 흘릴 시간에 연습을 더 하라’는 식으로 윽박지른다. 또 미디어는 데뷔 후의 아이돌의 부와 명예를 부각시키면서 멍들어 있는 내면보단 결과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스타가 되려면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아이돌이 되기 위한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에서 겪는 부당함도 ‘부와 명예’를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긴다. 이런 인식은 아이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돌 그룹 출신 A씨는 “무언가로 신체를 때려야만 폭력이 아니다. 이런 인식도 아이돌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면서 “누구에게나 그렇듯 단순히 경제적인 성공만이 전부가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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