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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의 핀셋] ‘청년 이웅열’ 망신주기식 수사 지양해야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입력 2020.07.01 08:29 수정 2020.07.01 15:09

약사법위반·사기·시세조종 등 혐의

업계 "검찰의 무리한 영장 청구" 비판 나와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영장실질심사(구속전피의자심문)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영장실질심사(구속전피의자심문)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코오롱호의 운전대를 잡고 앞장서 달려왔지만, 앞을 보는 시야는 흐려져 있고 가속 페달을 밟는 발에는 힘이 점점 빠졌다.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전 회장이 2018년 11월 전격 퇴임을 선언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는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라는 가수 윤태규의 ‘마이 웨이’ 가사를 읽어 내려갈 땐 눈물을 닦아 내기도 했다.


만 62세의 그룹 총수가 한참 더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박수받으며 떠났던 보기 드문 사례로 기억에 남는다. 검은색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별다른 퇴임식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회사를 떠났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한 그는 12년 만인 1985년 임원으로 승진했고, 1991년 부회장에 오른 뒤 1996년 1월 회장에 취임해 23년간 코오롱그룹을 이끌었다. 취임 후 3년 만인 1999년에 미국 메릴랜드주에 코오롱티슈진을 세웠고, 이듬해인 2000년에는 코오롱생명과학을 설립했다.


그러면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개발에 착수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연구개발비만 수천억원이 투입된 인보사는 이 전 회장이 ‘네 번째 자식’이라고 부를 만큼 애정이 각별했다.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만큼 인보사의 성공과 티슈진의 상장에 이 전 회장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인보사 성분이 뒤바뀐 것을 미리 알고 서둘러 은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은 말 그대로 의혹일 뿐이다. 성분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도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할 총수가 어디 있을까.


그룹 회장이 일일이 성분 내용까지 보고받기는 어려웠을 가능성도 있다. 인보사 개발 방향과 투자를 결정하는 '큰 그림'은 직접 그렸어도, 세세한 성분까지 이 전 회장이 챙길 수 있었겠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4월 인보사의 임상 3상 재개를 결정해 안전성과 효과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남아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 미국 임상 3상이 재개된 이후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를 제외한 핵심 임원 3명은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검찰이 무리하게 프레임을 짜 그룹 오너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구속 수사를 밀어 붙인건 난센스라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1일 새벽 이 전 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이 "인보사의 성분 착오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이 전 회장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시행착오 없이 단 번에 신약 개발에 성공하기는 어렵다. 무조건 총수를 구속하는 분위기라면 어떤 기업이 과감하게 신사업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잘못은 낱낱이 파헤쳐 일벌백계하는 게 옳다. 그러나 아직 인보사에 대한 과학적 판단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총수 망신주기식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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