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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집안싸움 된 긴급재난지원금…무너진 정부 자존감

배군득 정책경제부장 (lob13@dailian.co.kr)
입력 2020.04.23 11:25
수정 2020.04.23 11:30

선 넘은 여당의 정책 개입…’관료패싱’에 경제부총리는 침묵

향후 경제정책도 여당 입맛대로…뒷수습에 정부가 나서는 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비상경제회의 결과 브리핑 전 인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여당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집안싸움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초 정부안이었던 소득 하위 70%를 뒤집고 모든 가구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4·15 총선 이후 공약을 지키겠다며 칼을 빼든 여당은 정부의 난색에도 자신들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총선 전 이미 정부안을 수용했던 여당이 돌연 지급대상 기준을 놓고 정부와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여당의 품격’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긴급재난지원금 자체를 보더라도 정부는 반대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했다. 여당이 밀어부치니 청와대와 정부가 절충안을 찾아 마련한 것이 ‘소득 하위 70%’ 였다. 이 과정에서 7조6000억원이라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까지 수립하며 최종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경제컨드롤타워도 무시하는 여당…경제정책 간섭도 나설 듯


그런데 총선 이후 여당 태도가 더 강경해졌다. 타협이나 설득이 아니라 관철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정부에 보냈다. 그동안 정치권 의견에 귀를 기울이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불편한 심기를 ‘침묵’으로 일관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여당과 기획재정부가 대립각을 세우자, 정세균 국무총리가 중재에 나섰다. 지난 22일 주요 매체에서는 ‘당정, 모든 가구에 재난지원금 지급 합의’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쏟아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총선 이후 불과 8일 만에 일어났다. 정부로서는 한달동안 고민하며 수립한 긴급재난지원금 기준안이 8일 만에 번복되는 허무한 순간이었다. 한국경제의 경제컨트롤타워라는 경제부총리는 이번 협의에서 들러리로 전락했다.


일각에서는 여당의 정부 정책 개입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른바 ‘관료패싱’도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됐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여당에서 부동산 정책과 법인세 등에 대한 압박에 시달렸다.


지난 2017년 8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현 법무부 장과)가 불을 당기고 이튿날인 21일 문 대통령이 곧바로 공식화한 여권발 ‘부자 증세’ 논의에는 김 전 경제부총리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각 경제사령탑이자 정부 세제개편안을 작성하는 총책임자인 김 부총리지만 “(법인세와 소득세의)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고 수차례 했던 말이 머쓱한 상황이 됐다. 그런 김 부총리 앞에서 증세 문제를 가장 먼저 공론화한 사람도 정치인 출신의 김부겸 장관이었다.


최근 경제정책들은 대부분 당정 협의로 발표된다. 그런 점에서 긴급재난지원급 지급 기준 역시 당정 협의를 거쳐서 발표한 것이다. 그럼에도 또 다시 정부를 무시한 채 당론을 정책에 밀어 넣겠다는 여당의 태도를 국민이 얼마나 지지를 보낼지 궁금한 대목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앞으로 개혁 과제를 추진할 때도 ‘관료패싱’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럴 경우 정부 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내각에 여당 의원이 많이 들어가면 국회가 대통령 권한을 견제할 힘이 약해진다”며 “게다가 정치인 장관 힘이 세서 관료 전문성이 배제되면 자칫 의사결정이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여당 정책개입 어디까지…의욕 잃은 공직사회


여당의 정책 개입은 정부의 고유한 정책수립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 같은 흐름이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뿐만 아니라 세법·예산 등 정부 고유 업무까지 여당 입김이 작용할 공산이 크다.


긴급재난지원금만 놓고 봐도 이런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긴급재난지원금이 거론되는 자체부터 난색을 표했다. 기재부의 보루는 ‘재정건전성’이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IMF)이후 정권이 교체될 때도 재정건전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치권 역시 기재부가 재정건전성 문제를 제기하면 한 발 물러섰다. 향후 세수폭탄 등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책임의 화살이 정치권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이번 긴급재난지원금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고소득자의 자발적 기부’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기준은 ‘소득 하위 70%’보다 더 애매하다. 고소득자 기준을 어떤 지표로 결정할지 구체적인 언급도 없다.


여당의 의도대로 ‘자발적 기부’가 이뤄지지 않으면 펑크난 재정과 정책적 결함은 고스란히 정부가 떠안게 된다. 좋지 않은 선례로 남게 된다는 얘기다. 정부 역할론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정치권 의견은 정책 수립의 방향성에 대한 조언일 뿐 정부를 흔들어서는 좋은 정책 수립이 쉽지 않다. 더구나 이미 수립된 정책을 대폭 수정하는 것은 더 위험성이 높다. 중앙정부는 정책 수립에 최소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비상경제체제를 선언하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여당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정부 정책은 시장에 풀리기 전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홍 부총리는 문 정부 출범 후 몇 안되는 ‘관료출신’이다. 정부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인 셈이다.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공직사회를 대변하는 행동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추진할 경제 대책들에 대해 정치권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인 셈이다. 여당과 청와대가 정부에 신뢰를 주지 못하면 국민 불신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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