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초재선 '툭탁거림'…근본은 "누가 쇄신 대상이냐"
입력 2019.11.08 13:08
수정 2019.11.08 13:15
홍준표 "딸랑이, 십상시, 의원 깜이 안 된다"
초재선 "분열조장 해당행위…이성 상실한 듯"
'인적쇄신 대상 누구냐'에 상이한 인식 보여
홍준표 "딸랑이, 십상시, 의원 깜이 안 된다"
초재선 "분열조장 해당행위…이성 상실한 듯"
'인적쇄신 대상 누구냐'에 상이한 인식 보여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와 초·재선 의원 그룹 사이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공방의 근본에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누가 과연 인적 쇄신 대상인지'라는 문제제기가 깔려 있는만큼 논란이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8일 페이스북에서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심사위원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총재 측근에서 십상시 노릇했던 '딸랑이' 의원, 깜 안되는 초·재선, 심지어 1년 6개월밖에 안된 보궐선거 출신 초선 의원도 깜이 안돼 '물갈이'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대 공천은 '진박 감별사'의 준동으로 깜 안되는 초·재선이 참 많다"며 "(인적 쇄신은) 선수·지역을 기준으로 할 게 아니라,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것은 국회의원 깜이 되느냐"라고 강조했다.
홍 전 대표의 입장 표명은 지난 5일 김태흠 의원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전직 당대표·지도급 인사의 수도권 출마 요구와 3선 이상 영남·강남 중진의원의 '결단'을 골자로 하는 '인적 쇄신' 압박에 대한 반격으로 해석된다.
앞서 옛 친박 성향 의원들이 주류를 이루는 초·재선 의원 모임 '통합과 전진'은 전날 "당의 온갖 혜택을 받으며 성장해 당을 이끌어온 지도자급 인사와 다선 중진의원은 전략지역에서 민주당 등 좌파 세력에 맞서 당과 나라를 살리는 역할을 해달라"고 '인적 쇄신' 요구를 이어갔다.
아울러 이들은 홍 전 대표를 겨냥해 "당대표를 지낸 분의 계속되는 당내 분열 조장 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해당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인적 쇄신' 요구에 불을 당겼던 김태흠 의원도 같은날 페이스북에서 "당의 지도자를 자임하는 분들은 수도권에 출마해달라고 한 고언이 귀에 거슬렸는지 '친박''십상시' 운운하며 이성을 상실한 듯 하다"며 "내가 당에 해악을 끼쳤다고 한들 어디 홍 대표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맞받았다.
'십상시''딸랑이''깜이 안 된다'고 포문을 연 홍 전 대표와 '분열조장''해당행위''이성을 상실'이라는 말을 동원한 초·재선 의원 간의 공방의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들의 공방은 단순한 구원(舊怨)이나 감정대립, 자리다툼 등의 문제가 아니라, 총선을 반 년 앞두고 '누가 쇄신 대상이냐'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해결되기 어려우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해결이 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초·재선 의원들의 공격은 정석적이다. 지금까지의 정당사에서 모든 '인적 쇄신' 요구가 초·재선 소장파들이 다선 중진이나 정치 원로를 겨냥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역대 '정풍 운동'의 선례에 따라 '인적 쇄신'의 화로에 장작을 던져넣고 있다.
당의 지도자급 인사나 3선 이상 다선 중진의원들이 용퇴를 하고 자리를 내줘야, 새로운 지도자도 출현하고 당이 건강한 모습을 갖춘다는 주장이다. 김태흠 의원은 이를 가리켜 "당이 피라미드 형태가 돼야지, 역피라미드나 모래시계처럼 되면 안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반면 중진의원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한국당의 상황은 역대 '정풍 운동'이나 당내 '인적 쇄신'이 직면했던 상황과는 사례 자체가 다르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중진의원은 "초·재선 의원들이 탄핵으로부터 지난 지방선거 패배에까지 이르는 당의 존망 위기 국면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무슨 역할을 했는지 기억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며 "역대 가장 존재감 없고 역할 없고 무능·무력한 초·재선 의원들"이라고 일갈했다.
일각에서는 홍 전 대표와 초·재선 의원 간의 공방 자체를 문제삼기도 했다. 홍 전 대표가 당권을 잡고 있을 때에는 조용하다가, 당권이 황교안 대표에게로 넘어가 홍 전 대표가 힘이 없어지자 싸움을 걸고 나섰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참패 직전 홍 전 대표에 맞서는 구당중진연석회의에 참여했던 또다른 중진의원은 "홍준표 전 대표가 지방선거를 패배로 몰아가기에 거기에 제동을 걸고 나서려 했던 의원들은 다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이었다"며 "그 때 초·재선들은 뭘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홍 전 대표와 초·재선 의원들 간의 공방을 한국당의 옛 계파 관점에서 바라보는 견해도 나온다.
한국당은 2004년 17대 총선과 그 이전까지는 친박·비박의 개념이 없었다. 18대 총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이방호 전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아 무리한 '친박 솎아내기' 공천을 하면서 이른바 '친이 공천'이 이뤄졌다.
19대 총선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권을 장악하면서, 20대 총선 때는 박 전 대통령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통해 관여하면서 '친박 공천'이 단행됐다. 결국 19·20대 때 등원한 초·재선 의원은 친박이 많고, 18대 이전에 등원한 3선 이상 의원들은 비박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방의 이면에는 '친박 공천'에 의해 등원한 친박 초·재선 의원들이 당의 몰락에 책임을 지고 혁신돼야할 '인적 쇄신'의 대상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당의 '혜택'을 받고 활동했는데도 보수가 이 지경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한 3선 이상 의원들이 쇄신 대상인지를 놓고 샅바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공방은 결국 공천권을 쥐고 있는 황교안 대표가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려 '인위적 정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홍 전 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황 대표의 청주지방검찰청 초임 검사 재직 시절까지 거론해가며 압력을 넣었다. 황 대표와 홍 전 대표는 당시 평검사가 네 명 있던 청주지검에서 각각 세 번째와 네 번째 검사를 맡아 재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 전 대표는 "충고와 해당행위도 구분하지 못하는 측근들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십상시 정치'를 한다는 말을 듣는다"며 "청주 초임 검사 시절에는 명석하게 일을 잘하셨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편가르기 하지 말고 과감하게 당을 쇄신하라"고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