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에 침묵하는 청와대…왜?
입력 2018.12.24 06:00
수정 2018.12.23 21:51
<김우석의 이인삼각> 침묵, ‘탈원전 정책’에 의한 전력산업 어려움 때문
여당, ‘시간 끌기’ 전술로 보여…‘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산인 듯
<김우석의 이인삼각> 침묵, ‘탈원전 정책’에 의한 전력산업 어려움 때문
여당, ‘시간 끌기’ 전술로 보여…‘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산인 듯
꽃다운 청년이 채 펴보기도 못하고 꺾이고 말았다. 지난 11일 태안발전소에서 사망한 고 김용균씨다.
세상에는 온통 이 젊은이의 비참한 죽음과 원인이 된 열악했던 근무환경에 대한 분노가 넘친다. 어머니의 오열하는 모습에 많은 국민이 함께 울었다. 지난 20일 유족과 시민대책위,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며 1박 2일 노숙투쟁을 벌였다. 또 22일에는 1차 범국민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 이후 3000여 명이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에 대한 청와대의 침묵이다. 올 초만 해도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선언했을 것이고, 원청업체인 서부발전에 직접채용을 지시했을 텐데 말이다. 태안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은 공기업이다. 대통령의 지시 하나면 가능한 일이다. 인천공항공사에서 약속했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왜 태안발전소에는 적용될 수 없단 말인가?
그 이유에는 ‘탈원전 정책’에 의한 전력산업의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서부발전은 자체경쟁력 약화 뿐 아니라 한전의 부실화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난 정권에서 우량기업이던 한전계열사는 현정권들어 영업이익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전의 경우 11월 13일 공시된 올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49.7% 감소했다. ‘탈원전 정책’ 때문이다. 앞으로 원자력발전이 본격적으로 줄어들면 그 만큼 다른 연료를 비싼 가격에 사용할 수밖에 없고 한전계열사는 부실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계층적으로 자회사가 먼저 부실을 떠안고 모회사는 마지막에 감당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한전 부실화를 막을 수 있는 전기료인상은 현 정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탈원전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되고 국민적 저항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인상 문제에서 보았듯이, 현정부는 전기료인상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전력회사 입장에서 적자는 다음 사장과 다음 정권에 떠넘길 수 있다. 그러나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이 문제다. 원자력발전을 대신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다고는 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돈 먹는 하마’다. 보조금이란 명복으로 정부예산만 축내고 있다. 에너지공급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는 석탄 등 기존의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화력발전소인 태안발전소가 김용균씨 사망사고에도 불구하고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지 못한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실지로 필자가 최근에 만난 충청지역 주민들은 “우리 지역에 화력발전소가 많은데, ‘탈원전’이후 여기서 배출되는 매연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공기가 크게 나빠졌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렇게 무리하게 가동되는 화력발전소에, 비용을 아껴야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안전에 대한 더 많은 투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캥기는 부분’이 많은 정부와 청와대는 이런 상황를 잘 알기에 선득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흑자나는 우량기업 인천공항공사와 다른 이유다.
서부발전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헐값에 위험하고 험한 일을 외주기업에 하청 준다. 원청업체의 직원들은 위험감수를 거부할 것이고, 감당한다 해도 더 많은 비용이 들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서부발전 정규직의 평균연봉은 7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란다. 이정도면 ‘신의 직장’이다. 필자는 서부발전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故 김용균씨 관련 입장이 있나 궁금해서다. 예상과 달리 김용균씨 관련 게시문은 전혀 없었다. 그 흔한 검은색 리본도 찾을 수 없었다. ‘부고’ 란에 태안발전본부 정규직 직원 가족의 부고는 있었으나, 비정규직인 김용균씨 죽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따뜻하고 평온한 일상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세상이 떠나갈 듯 아우성인 비정규직의 절규엔 관심이 없어보였다. “역시 ‘귀족노조’구나” 싶었다. 그들의 안정된 생활이 비정규직의 고통위에 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으나,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부발전 노조가 침묵하는 동안,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한국서부발전 대표를 살인방조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 시민단체는 김용균씨의 비극을 ‘위험 자체를 없애기’보다는 ‘비정규직 철폐 이슈화’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 같았다. 처음 비극이 있었을 때,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대통령에게 ‘일자리 공약’을 지키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옳은 접근이다. 일자리가 많아지면 노동자가 희소해진다. 그러면 노동자의 안정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것은 경제가 안전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민단체는 김용균씨의 비극을 ‘비정규직 이슈’를 극대화하는 계기로 호도하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란 잘 고안된 구호도 만들고 언론을 통해 성공시켰다. ‘위험을 줄이는 정책’은 사라지고 ‘비정규직 철폐’ 이슈만 진동한다. 지금 상황에서 불가능한 주장이다. 만약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지난 1년여 발생했던 부작용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공공부문 뿐 아니라 민간영역에도 부정적인 여파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당연히 경제는 더욱 어려워 질 것이고 동반해서 고용도 나빠질 것이다. 일자리는 더욱 줄고 위험은 배가 될 것이다.
정부는 선뜻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계속 침묵중이다. 딱한 일이다. 민심에 맞닿아 있는 여당이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멨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총대다. 이 법을 국회에서 연말까지 통과시키고 문대통령의 시민단체 면담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야당에 SOS를 보내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도 본질적인 해법은 아닌 것 같다. ‘시간 끌기’ 전술로 보인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산인 것 같다.
‘노동안전정책’과 ‘고용정책’은 분리돼야 한다. 둘을 뒤섞어 생각하기 때문에 난맥이 벌어지는 것이다. ‘위험’은 외주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내부 직원들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위험을 줄이려면 돈이 든다. ‘2인 1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원을 더 고용해야 한다. 안전설비도 개선해야 한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전력산업에서 돈줄을 막아 놨다. 전기료를 올릴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마른 수건을 짜듯’ 하청업체에 위험과 부담을 떠넘길 수 밖에 없다. 피해는 김용균씨 같은 경제적 약자의 몫이다. 탈원전을 포기해 전력산업의 경쟁력을 되찾아야 한다. 값싼 전기를 공급해 다른 산업도 부흥시켜야 한다. 원전증설과 수출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또 각종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일본같이 ‘인력난’이란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다. 근무여건도 자연스럽게 좋아 질 것이다. 이렇게 뻔한 길을 외면하고 계속 꼼수만 둔다면, 앞으로도 제2, 제3의 김용균씨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글/김우석 (현)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