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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회의를 탄핵하라"…현직 부장판사의 사이다 직구

이상준 기자
입력 2018.11.24 05:00
수정 2018.11.24 04:50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 "헌정사상 최악 사법파동"

법관 전체투표·설문조사 제안…‘동료 판사 탄핵’ 새 국면 맞아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 "헌정사상 최악 사법파동"
법관 전체투표·설문조사 제안…‘동료 판사 탄핵’ 새 국면 맞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거래 의혹이 불거지며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월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된 법관 대표 110여명이 참석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처리 방안을 놓고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갖고 있다. ⓒ데일리안

최근 대법원장 자문 기구인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법관 탄핵 촉구' 의결에 대해 현직 부장판사가 23일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사법권한을 남용해 동료 법관을 탄핵하자고 의결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하자"고 주장했다. 분명한 근거도 없이 동료를 탄핵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하는 한편 동료 법관에 대한 탄핵이 필요한지 여부를 전체 법관들의 의견을 들어 정하자는 취지다. 그는 문제의 의결을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나쁜 사법파동"이라고 비판했다.

김태규(51·사법연수원 28기)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코트넷에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행정권 남용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의결한 것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사실상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해산을 주문했다.

김 부장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이루어진 법관들에 대한 탄핵 의결은 내용과 절차, 성격 그 어느 것에서도 정당성을 가지지 못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라며 "그러한 의결에 이른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대한 탄핵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된 의결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대한민국 사법부와 동료 법관들에 대한 충심에서 탄핵의 필요성에 대해 전체 법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 투표 내지는 설문조사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권한남용의 정도가 도를 넘었다"며 "아직 수사도 끝나지 않았고, 재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을 제대로 된 증거 한 번 살펴보지 않고 겨우 두세시간의 회의 끝에 유죄로 평결했는데, 일반시민들도 숙지하고 있는 무죄추정, 적법절차나 절차적 정당성, 예단방지 등의 용어는 오히려 이들 법관들에게는 그저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법률용어 정도로 치부되는 느낌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국회에 탄핵을 요구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대한 도전"이라며 "탄핵소추권한은 국회의 권한이고 이것을 행사하는 것은 오로지 국회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지, 법원이 나서서 그 권한을 행사하라고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권력분립의 원칙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법관에게 비위가 발견되고 그 정도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할 정도이라면 그 때 가서 파면하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에 의하면 법관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면 파면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으며, 만약 모든 형사사법 절차를 거쳐서 법관에게 비위가 발견되고 그 정도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할 정도라면 그 때 가서 파면하면 될 일"이라며 "금고형 이상이 아닌 벌금형 정도를 선고할 만한 사안에 대해 탄핵이라는 강한 징벌을 더해야 할 특별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탄핵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인데, 이번에 법관탄핵안이 의결된 경과도 보면 다분히 정치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며 "현재 법원에 남아 있는 법관들에게 당장 탄핵이라는 중대한 징벌을 안겨줘야 할 필요에 대한 의문에 더해 그 진행경과도 보면 대단히 신속히 이루어져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항간에 '탄핵거래'라는 표현도 나오고 있다면서, 다른 안건도 아니고 법관 탄핵을 논의하면서 그리 서두를 일이었나를 되짚어 봐야 한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마지막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있기 불과 6일 전에 안동지원 법관들이 법관탄핵을 안건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그 안건은 회의 당일에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온 다른 많은 안건들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다루어졌으며, 그 안건이 가결되자마자 국회 여당의원들이 즉각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며 "법관탄핵 의결이라는 중차대한 일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데 불과 1주일 남짓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관 전체의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를 모으기 위해서 다음 회기로 미루거나, 아니면 전체 법관을 대상으로 직접 그 의사를 물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하여 의결 정족수를 가중 정족수로 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법관탄핵 안건의 발의자들은 밀어붙였다"며 "왜 동료법관을 단죄하는데 이리도 서둘러야 했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전체 법관의 대표기관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거의 상설화되어 법관들이 가장 열심히 일을 해야 할 4월부터 11월까지 7~8개월 동안에 다섯 차례나 회의를 가지고, 논의하는 안건도 중요한 사법부의 현안 한·두 가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사법행정사무에 대하여 관여하고 있어, 더 이상 저항기구가 아니고 여론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기구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특정학회 출신이 조직을 장악하고, 그 학회 내에서도 중심조직이 의사결정을 이끌어 간다는 의혹은 이제 언론에서는 공지의 사실로 여겨지고 있는데, 국민의 뜻이나 언론의 질타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회의록은 (비록 법관들에게는 공개로 하지만) 대외적으로 비공개가 되기를 바라고 있고, 법관대표들의 소속 학회는 '신상정보'에 해당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법관들조차 그 분포가 어떤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법부가 특정학회의 이너그룹의 전유물이 될 우려는 조금이라도 초래되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안철상 법원행정처장(61·15기)은 이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법원의 공식 입장을 금명간 내놓겠다"고 밝혔다. 안 처장은 '탄핵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채로 의결한 게 올바른가' '구체적인 위반 사실 없이 여론을 감안한 탄핵이 가능한가' 등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59) 질의에 "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야당 의원들도 이 자리에서 법관 탄핵 논란을 잇달아 지적했다. 함진규 한국당 의원(59)은 김 부장판사 글을 언급하며 "(탄핵 대상으로 지목되는 분들의) 얼굴과 직책이 공개되면 과연 이분들이 재판 업무를 볼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안 처장은 "법관대표회의 일은 재판과 별개"라고 답했다.

이상준 기자 (bm2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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