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발 '패스트트랙' 엄포용?…여야 합의 없으면 '식물국회' 재연
입력 2017.02.17 14:44
수정 2017.02.17 17:56
국회선진화법 절차지만 최장 330일 소요…실례 전무
민주당 "여론에 성의라도 보이자는 것"…뾰족수 없어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개혁입법' 처리를 위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당장 자유한국당에선 야당의 독주라며 ‘투쟁 불사’까지 예고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현재 협상 자체가 민주당 안(案)에 대한 찬반 논쟁 수준에 불과한 데다 패스트트랙에 의한 법안 통과까지는 절차상 제약이 적지 않아, 여야 대결이 현실화할지는 두고 볼일이다.
이재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16일 오전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4당이 최소치로 합의한 내용은 그대로 진행하되 그 외 우리당 개혁입법 과제 중 시민사회 의견을 듣고 다른 야당과도 공감대를 이뤘던 것들은 패스트트랙 등 모든 국회법 절차를 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패스트트랙을 당장 진행할지, 검토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향후 수순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1차로 합의된 법안들을 쟁점화 시켜보고, 안되면 패스트랙을 동원해서라도 처리하겠다는 뜻“이라며 일정 부분 여지를 남겨뒀다.
민주당이 지정한 개혁입법은 4대 개혁(정치·검찰·재벌·언론) 관련 14개 법안과 민생 법안 8개를 합해 총 22개다. 2월 임시국회에서 해당 법안들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중 선거연령 인하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상법개정안에 대해선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거세다. 반면 상법개정안은 민주당이 ‘직권상정’까지 언급할 만큼 공을 들이고 있으며, 국민의당도 ‘반드시 통과돼야 할 법안’으로 지정한 부분이다.
앞서 4당 원내수석부대표 회의 결과 상법개정안 가운데 전자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에 대해선 일정 부분 접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당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날치기 논란’을 이유로 상임위 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여야 간 기류는 다시 얼어붙은 상태다.
다만 패스트트랙으로 인해 실제 여야가 충돌을 빚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패스트트랙이 국회법상 정당한 절차이긴 하지만, 해당 법안으로 지정만 된다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재적의원 또는 상임위 재적위원 과반수가 요구할 시 △국회의장 또는 상임위원장이 이를 무기명 투표에 부쳐 △재적의원 또는 상임위 재적위원의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후에는 상임위에서 180일 이내에 심사를 완료하지 못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 회부된다. 또 법사위에서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 회부된다. 본회의 회부 뒤에도 60일 이내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으면 이 기간 경과 후 첫 본회의에 자동상정된다. 결국 신속처리안건이 최초 지정 이후 본회의 표결까지는 최장 330일(11개월)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패스트트랙’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실제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패스트트랙을 통해 법안이 통과된 사례는 없다.
당직을 맡고 있는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애초부터 패스트트랙을 걸겠다는 게 아니었다”면서 “16일 의총에서 ‘합의 안된 법안들에 대해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패스트트랙이라도 걸어서 촛불 민심에 대해 뭔가 하고 있다는 성의라도 보이자’는 의견들이 있었다. 일단 정해진 법의 틀 안에서 최대치를 해보자는 것이지, 한국당과 예전처럼 부딪쳐서 끝을 보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말이 ‘신속처리’ 안건이지, 장장 300일이다. 실제로 된 적도 없다”라며 “그래도 제1야당 처지라는 게 마냥 한국당만 보고 정치를 할 수도 없지 않나. 탄핵이 인용되면 상황이 정말 달라지는데 300일이 걸리더라도 일단 제1야당으로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는 태도는 보이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원내 4당 체제 하에서 이번 협상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선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바른정당의 의사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 바른정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분당을 감행했지만, 당장 대선을 앞두고 각종 현안과 법안 협상 과정에서 ‘애매한’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각자의 안을 내놓고 협상에 임하기보다는, 민주당이 이미 내놓은 22개 개혁입법에 대해 찬성·반대·유보를 셈하는 모양새다. 현재 한국당이 주장하고 있는 노동개혁 3법이나 규제프리존 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등은 이미 19대 내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 발의됐다가 임기 종료로 폐기되거나 불발된 법안들이다. 바른정당 역시 독자적 안을 내놓는 대신, 각 법안에 대해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서 찬반을 고민하는 수준이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부딪치는 게 아니라 논의 자체가 안 되고 있다. 당내에서 논의해서 자기만의 안을 들고 나와야지, 이미 19대에서 끝난 걸 들고 나오니 협상이 되겠나”라며 “자기 것을 들고 와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아니라, 결국 민주당 안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이런 식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설사 한국당이 상법개정안 등 특정 법안에 끝까지 찬성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원내 4당 체제 하에서는 ‘대화’와 ‘국민 여론’으로 압박하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마땅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대해 원내 관계자는 “4당 체제와 선진화법 내에서 갈등 해결이 안 되면 아예 식물국회가 되어버린다. 300일이 걸리는 걸 알지만, 최후의 경우에도 결국 ‘대화와 타협’ 그리고 국민 여론으로 압박하는 것 외에는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원리에서 국민 여론이라는 게 법적 장치나 수단보다 때로는 더 유효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도 언제까지나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