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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트릴로지' 찬란한 촛불, 참호 속 죽음을 기억하라

이한철 기자
입력 2016.12.13 21:29
수정 2016.12.20 23:12

한국 초연 개막, 원작자 제스로 컴튼 극찬 속 순항

설명적·교훈적? "예상했지만, 하고 싶었던 말들"

배우 이석준과 김지현이 연극 '벙커 트릴로지'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 데일리안 이한철 기자

"(제1차 세계대전 때) 1000만 명에서 2000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죽음을 소중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김태형 연출이 13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벙커 트릴로지' 프레스콜에서 '멕베스'의 마지막 대사가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지적에 "예상했던 비판"이라며 이 같이 답했다.

김태형 연출은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게 남은 자들의 몫이라 생각했다"며 "먼 타국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도 많이 경험하고 느꼈던 죽음들이다. 남은 자로서 나름의 반성과 유지의 의미로 대사를 만들었다. 설명적이고 교훈적이라는 비판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다"고 자신의 소신을 강조했다.

마지막 대사인 '꺼져라 껴져라 찰나의 촛불이여'를 '타올라라 타올라라 찬란한 촛불이여'로 바꾼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벙커 트릴로지'는 '카포네 트릴로지'로 국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제스로 컴튼의 대표작으로 제이미 윌크스의 대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참호를 배경으로 아서왕 전설-아가멤논-맥베스 등 총 3개의 고전과 신화를 재해석한 독립된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배우 이석준이 연극 '벙커 트릴로지'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 데일리안 이한철 기자

김태형 연출은 "벙커라는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전쟁의 공포를 더 격렬하게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기로 결심한 이유를 전했다.

다수의 작품을 김태형 연출과 함께 만들며 신뢰를 쌓아 온 지이선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기꺼이 힘을 보탰다. 지이선 작가는 "군대를 안 갔다 와서 이 작품을 못 썼다는 얘기를 듣기 싫었다. 기존 작품들보다 훨씬 더 심혈을 기울였고 공부를 많이 했다"며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러면서 원작과 완전히 달라진 작품의 특성을 설명했다. 지이선 작가는 "(제1차 세계대전은) 무모한 참호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한국 관객들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고쳤다"고 말했다. 특히 '아가멤논'과 '멕베스'는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는 지이선 작가는 "쓰다 보니 어지러운 시국과 잘 맞는 작품이 됐다"고 자평했다.

캐스팅도 기대감을 높인다. 특히 '카포네 트릴로지'를 통해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무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객석을 경험했던 이석준, 신성민, 김지현, 정연은 '벙커 트릴로지'를 통해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배우들은 이 작품이 다른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석준은 "감정적으로 힘든 작품"이라며 "극한의 인간성을 세 작품에서 모두 보여줘야 한다. 인물에 대한 피폐성이 그대로 전이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김지현은 또한 "셰익스피어 고전의 무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텍스트에 많이 눌려 있었던 것 같다. 맥베스와 릴리 캐릭터가 마지막까지 제일 어려웠다. 아직도 계속 찾아가는 중이다"고 털어놨다.

배우 오종혁이 연극 '벙커 트릴로지'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 데일리안 이한철 기자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박훈, 오종혁, 이승원, 임철수는 세 가지 에피소드에서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인다.

오종혁은 "연출님, 작가님, 선배 배우님들까지, 쳐다보고만 있어도 배울 수 있는 분들이 많아서 꼭 함께 하고 싶었다"며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전했지만, 표정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올 여름에 '킬 미 나우'를 할 때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고통스러웠는데, 그걸 뛰어넘는 뭔가가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정연은 "(오종혁에게) 클릭비 전성기와 지금, 언제가 더 힘든지 자주 물어본다"고 촬영 현장의 에피소드를 전했고, 오종혁은 "'벙커 트릴로지'라고 답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공연 개막에 맞춰 원작 연출가 제스로 컴튼이 한국을 방문해 직접 공연을 관람해 화제가 됐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며 "영국의 원작은 거의 날 것에 가까운 작품이었는데, 한국 공연은 드라마와 캐릭터를 더욱 보강해 또 다른 작품으로 완성된 것 같다"고 극찬하며 한국 초연에 힘을 보탰다.

연일 매진행렬을 이어가며 순항하고 있는 '벙커 트릴로지'는 내년 2월 1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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