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화두 '해외노동자', 가려진 실상은...
입력 2016.12.12 17:12
수정 2016.12.12 20:48
NKDB, 러시아 파견 북한 해외노동자 인권실태 조사결과 발표
건설노동자 출신 탈북민 "하루종일 일하고 월급도 못 받아" 증언
NKDB, 러시아 파견 북한 해외노동자 인권실태 조사결과 발표
건설노동자 출신 탈북민 "하루종일 일하고 월급도 못 받아" 증언
지난달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에 북한 해외파견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사상 처음으로 다뤄져 북한 해외노동자에 대한 인권실태가 조명을 받고 있는 가운데, 실제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들이 장시간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로 건설과 벌목 부문에 집중된 러시아 파견 북한 노동자들은 휴일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도 생계유지가 어려운 수준의 저임금과 북한 당국의 부당한 임금 착취 등 기본적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북한해외인권 감시기구는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러시아 내 북한 파견 벌목공과 건설노동자들의 인권실태'라는 제목의 단행본 발간 기념 세미나를 개최하고, 러시아에 벌목공과 건설노동자로 파견된 경험이 있는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 50명에 대한 심층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박찬홍 NKDB 객원연구원은 "러시아 노동부가 밝힌 외국인 고용허가증 발급현황에 따르면 2015년 1~3월 러시아에서 고용허가를 받은 북한 노동자는 4만 7364명"이라며 "이는 중국 노동자와 터키 노동자에 이어 세 번째 큰 규모로, 국가별 인구비율로 환산하면 북한 당국의 러시아 해외 노동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장공(9026명) △석공(7672) △콘크리트공(4401명) △외장공(3618명) △도장공(3163) 등 건설업과 관련한 직종이 두드러지며, 2000명 수준 또는 그 이하의 벌목 부문 노동자들도 러시아에 파견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2000년대 이후 건설부문 노동자 파견으로 재정확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과거 수요가 많았던 벌목 노동자 수는 감소하고 건설 노동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조사 결과, 이들 파견 노동자들은 의식주와 관련한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저임금 고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에 파견된 경험을 가진 탈북민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현지 파견 노동자들은 휴식 시간이나 휴일 없이 하루 최대 20시간 근무하며 월 60달러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개인별로 당에 납입해야 하는 할당액을 채우지 못하면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이날 세미나에 참석해 증언한 탈북민 김철수 씨(가명, 40대 남성)는 "근로자들은 계약서도 없이 작업소장이 정해주는 양을 채우는데,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채우지 못할 양"이라며 "그렇게 일해도 당에 바쳐야 할 달러도 있고 오고간 비행기 값도 있어서 처음 가서 한 열달 동안은 월급을 손에 쥐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러시아 칼루카 지역에 파견돼 건설노동자로 약 1년 6개월가량 일하다 탈출, 올해 초 국내에 입국했다.
이 가운데 북한 당국은 파견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사상교육을 실시하고 감시체계를 구축 외부와의 접촉이나 작업장 이탈을 차단하고 제재하는 등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파견 노동자들이 북한 밖의 세계에 노출될 경우 체제를 훼손할 수 있다는 북한 당국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증언자 김 씨는 "외부 세계를 모르게 하고 북한의 실태를 다른 나라에 알리기 싫어 비디오나 출판물을 일체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하고, 러시아에 와서도 한국 비디오는 물론이고 주재국(러시아) 채널도 보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자아비판)라는 것을 하는데 잘못한 것이 없어도 지어내거나 만들어서 써내기도 한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에 박 연구원은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유린 실태와 관련, 북한 당국이 즉각 강제노동, 강제귀국, 정보접근권 제한 등의 권리 침해 행위를 중단하고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주재국인 러시아에는 북한 당국에 의한 노동자의 인권 유린을 철저히 감독하고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이밖에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가 이들 노동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국제사회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문제 해결 방안 또는 제재 방안을 제시하고, 한국 정부는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북한 당국과 러시아 정부에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러시아 파견 북한 노동자의 인권문제가 포함되도록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9일(현지시각)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을 정식 의제로 논의했다. 지난 2014년 이후 3년 연속으로 안보리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다룬 것이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권고에도 북한의 인권 상황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15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북한의 인권유린 책임규명과 처벌을 권고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에는 안보리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포함해 '외화벌이'에 내몰린 북한 노동자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도 최초로 담겼다. 해당 결의안은 조만간 유엔총회 본회의를 통과해 최종 확정될 전망이며, 유엔총회가 결의안을 채택하면 지난 2005년 이후 12년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