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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별세] 이건희 회장과 함께 한 사람들

이건엄 기자 (lku@dailian.co.kr)
입력 2020.10.26 06:00 수정 2020.10.25 11:26

이 회장 '인재제일' 가치 앞세워 삼성 전성기 이끌어

이학수 고문 비롯해 윤종용·황창규·이기태 등 쟁쟁


“우수한 사람 한 명이 천 명, 만 명을 먹여살린다.”


살아 생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이다. 이처럼 이 회장은 핵심 인재 확보와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5대 핵심가치 중 제 1의 가치가 인재제일(People)일 정도로 인재 육성에 적극적이다.


때문에 삼성그룹이 현재와 같이 전세계 일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다양하지만 그 중 핵심 인재의 발굴과 기용이 핵심 확보가 주요 원동력으로 꼽힌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을 이끄는 동안 그를 도운 ‘황제의 인재들’ 면면을 살펴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연합뉴스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연합뉴스

삼성 '핵심 중의 핵심'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에게 소병해 비서실장이 있었다면 이 회장의 최측근으로는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꼽힌다. 부산상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뒤 1971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한 이 고문은 재무부문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며 1996년 회장비서실장으로 발탁된다.


이어 금융위기의 칼바람이 거세게 불던 1998년 비서실장 겸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으며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IMF의 위기를 넘기며 이 회장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됐다. 이후 이 회장의 최측근으로 근무하며 14년 간 이 회장을 보좌했다.


지난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폭로 사건으로 삼성전략기획실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후 맡게 된 삼성전자 고문 자리도 2010년 인사를 통해 내려놓으면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윤종용 현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연합뉴스 윤종용 현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연합뉴스

‘삼성전자’ 시대 열다… 윤종용 현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


삼성그룹의 대표 사업 분야를 꼽자면 단연 전자 분야다. 지금 삼성전자가 세계 일류로 자리잡기까지 그 기반을 마련한 대표 전문경영인으로는 바로 윤종용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이 꼽힌다.


윤 이사장은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사해 고 이병철 회장 시절인 1980년 중반 삼성전자의 VCR사업부를 맡았지만 실적 부진으로 필립스와 현대전자를 전전하기도 했다.


이후 이 회장은 향후 전자사업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윤 고문의 능력을 알아보고 1987년 그를 다시 삼성전자로 불러들인다. 윤 이사장은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등 삼성그룹 전자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삼성전자의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기술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1998년 미국산업공학회로부터 ‘최고 경영자상’, 2000년 미국 비즈니스위크로부터 세계 경영자 25명, 포춘으로부터 ‘올해의 아시아 경영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2012년에는 세계 100대 최고경영자에서 3위에 오르는 등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렸다.


황창규 전 KT 대표이사 회장.ⓒ연합뉴스 황창규 전 KT 대표이사 회장.ⓒ연합뉴스

전세계 놀래킨 ‘황의 법칙’ 황창규 전 KT 회장


삼성전자 내 부문별 사업을 이끈 인재들 역시 기라성 같다. 이중 황창규 전 KT 대표이사 회장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의 신화를 이끌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1976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을 졸업한 황 전 회장은 1992년 이 회장의 부름을 받고 삼성전자에 몸을 담게 된다. 이후 황 전 회장은 1994년 256M DRAM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반도체 강국의 자리로 올려놓는다.


당시 황 전 회장이 특히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황의 법칙’ 때문이었다. 그의 성을 따서 이름을 지은‘황의 법칙’은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그의 말에서 탄생했다. 기존 반도체 시장에서 통용되던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깬 것이다.


실제로 황 전 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는 1999년 256MB에서 2000년 512MB, 2001년 1GB, 2002년 2GB, 2003년 4GB, 2004년 8GB, 2005년 16GB에 이어 2006년에는 32GB 개발에 성공하면서 이 법칙을 그대로 입증하기도 했다.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연합뉴스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연합뉴스

‘애니콜 신화’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


반도체 부문에 황 회장이 있었다면 휴대폰 부문에는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있다. 현재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로 전세계 1위에 오른 데에는 앞서 이 전 부회장이 세운 ‘애니콜 신화’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인하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삼성전자에 입사한다. 이어 1985년 삼성전자 비디오사업본부장, 1994년 무선사업부문 이사, 1999년 무선사업부장 부사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한다.


특히 부사장을 역임한 직후 그는 모토로라와 노키아가 장악하고 있던 전세계 휴대폰 시장에 애니콜을 출시하며 돌풍을 일으킨다.


또 인텔·스프린트 등과 함께 와이브로를 국제 표준화시켜 대한민국이 기술과 플랫폼을 해외로 수출하는 통신 분야 강대국에 오르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 전 부회장은 애니콜의 품질을 의심하는 해외 바이어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니콜을 제품을 바닥에 던진 일화로도 유명하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연합뉴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연합뉴스

‘황제의 인재’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부회장


최지성 전 부회장은 앞서 이학수 고문이 중심에 있었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미래전략실을 이끌고 있다.


최 전 부회장은 서울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이후 1981년 삼성회장 비서실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맡다가 1994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을 섭렵했다. 이어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른 동시에 미래전략실장을 맡게 된다.


반도체를 비롯해 TV, 스마트폰 등 삼성전자의 주요 사업들을 앞장서 이끈 최 부회장은 결국 이 회장으로부터 신뢰를 얻게 된다. 특히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교사 역할을 해온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이건엄 기자 (lk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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