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는 '좀비'? 김양건 국장위원으로 살아 돌아와
입력 2015.12.30 15:46
수정 2015.12.30 15:48
김기남·최태복 노동당 비서 사이에 거명, 서열 6위…전문가들 "복권 확인"
북한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의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명단에 최룡해가 다시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지난달 초 협동농장에 보내져 혁명화교육을 받고 있다고 알려진 최룡해의 복권이 확인됐다.
30일 ‘김양건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따르면 최룡해는 김기남 노동당 비서 다음으로 6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최룡해는 지난달 초 사망한 리을설의 장의위원회 명단에서는 제외된 바 있고 그보다 앞선 지난해 7월 전병호 사망 당시에는 장의위원 명단 순위에서 9위에 오른 바 있다.
최룡해는 김정일 집권 당시 두 차례 일시적으로 좌천돼 혁명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리을설의 장의위원회 명단에 빠지면서 적어도 세 차례 이상 실각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복수의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최룡해는 좌천될 때마다 특유의 처세술로 중앙에 복귀했다.
특히 김정은 정권 들어와서는 정치적 위상의 부침을 심하게 겪었다. 2012년에는 총정치국장으로서 인민군 차수를 지내다 2014년 5월 돌연 총정치국장에서 해임, 군복을 벗고 노동당 근로단체 비서로 물러났다. 이후 최룡해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중앙에 복귀했으나 또 다시 정치국 위원으로 강등되는 등 수시로 ‘충성검증’을 받았다.
장의위원회 명단은 북한의 당·정·군 등 전 분야의 인물들을 권력 순위에 따라 나열하고 있어 현재 북한 엘리트들의 권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때문에 북한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좌천’됐다고 알려진 최룡해가 다시금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점에 미뤄 그의 복귀가 확실시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30일 “북한이 발표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을 보면 최룡해의 이름이 김기남 비서와 최태복 비서 사이에 언급되고 있어 그의 복권이 확인되고 있다”며 “당중앙위원회 비서직에서 해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원직에 복귀된 것을 보면 최룡해의 정치적 처세술이 매우 탁월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실장은 “올해 마원춘, 한광상의 복권에 이어 최룡해의 복권은 보다 관용적인 인사정책을 통해 공포정치로 악화된 김정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도 본보에 “현직에 있지 않으면 명단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최룡해가 복귀했다고 보는 게 맞다”며 “당 비서들 사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정치국 위원이자 당 비서로 복귀했다고 볼 수 있고, 서열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 속해있다는 점에서 권력을 다시 잡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연구위원은 “최룡해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만큼 이번 혁명화기간에 열심히 했을 것이고, 애초에 본인이 백두산발전소 붕괴에 대한 연대책임으로 혁명화를 자원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복귀가 빨리 이뤄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조직지도부 출신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조연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이른바 ‘공안라인’도 여전히 부동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리을설 사망당시와 비교해 순위 변동이 없었다.
이와 관련,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황병서, 김원홍, 최부일, 조연준 등 공안라인 인물들 중 자리가 변동된 인물이 한 사람도 없는 점을 보면 여전히 북한에서는 공안라인에 의한 공포통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리영호 군 총참모장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 북한의 군부 및 행정부 핵심 세력들이 줄줄이 숙청됐지만 황병서-김원홍-최부일-조연준 등 공안라인은 현재까지 김정은의 신임을 바탕으로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그간 여러 차례 김정은을 밀착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떠오르는 실세로 거론됐던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이름은 이번 명단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지난달 리을설 장의위원회 171명 명단은 물론, 이번 김양건 장의위원회 70명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때문에 아직까지 그를 ‘실세’로 평가하기는 섣부르다는 견해가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그가 김정은의 현지시찰 때마다 지근거리에서 수행하고 있는 점에 미뤄 비선에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 그의 부상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장의위원회 명단에는 원동연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의 이름(67번째)도 포함됐다. 대남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통일전선부의 2인자였던 원동연은 앞서 뇌물 비리가 적발돼 숙청 또는 해임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 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향후 원동연이 김양건 사망으로 비상에 걸린 대남사업에 관여하게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명단에서 원동연 바로 앞에 거명된 김완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서기국장(66번째)도 김양건의 공백을 메울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정성장 실장은 “김완수는 우리 사회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국전선 의장 겸 서기국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민족화해협의회 의장, 6·15공동선언실천 남북공동위원회 북측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대남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며 “장의위원회 명단을 가지고 김양건의 후임자 지명 가능성을 판단해보면 김완수와 원동연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밖에 이번 명단에서는 평안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를 지낸 리만건 당 중앙위원회 위원의 권력 서열이 수직 상승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불과 한 달 전인 리을설 사망 당시에는 156번째로 장의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으나 이번 김양건 장의위원 명단에는 29번째에 거론돼 차기 권력 엘리트로 부상할 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