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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정' 회귀인지 알아? '검인정' 수준이 오죽하니까"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5.10.23 11:01
수정 2015.10.23 16:29

<칼럼>세계적 추세 거스릴만큼 검인정, 선진국 수준 근접 못해

만약 정부가 대학교 역사 교재를 국정화한다고 발표하다면 어떻게 될까. 좌우를 막론하고 그 어느 누구도 정부의 그와 같은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어야 할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는 결코 국정화를 허락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독재이자 권위주의 통치다. 아무리 올바른 역사교육을 표방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는 문제로 주제를 옮겨오면 관점은 달라진다. 국정화 결정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일단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학과 고등학교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교수에게 어떤 수업을 들을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공교육 소비자의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정해진 담당 교사에게서, 정해진 교과서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학부모가 학교 운영에 관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각 학교의 담당 교사들이 모여 1,2,3순위를 정하고 다시 최종 결정을 학교운영위원회에 맡기는 절차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학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에게 “억울하면 참여해서 의견을 내라”라고 하는 것은 다소 무책임하다.

그런 가운데 교과서 공급 주체마저 편향돼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사료로 채택된 교과서를 현재 고3 학생들이 보고 있다. 수정명령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광복군에는 18줄을, 사회주의 계열의 조선의용군과 김일성이 주도한 동북항일연군에는 28줄을 할애하는 ‘비상식적’인 교과서가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과 나라사랑어머니연합, 구국채널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을 펼치고 '북괴와 종북 공산주의 검정교과서 즉각 폐기,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채택 전폭 환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게다가 어떤 출판사의 교과서는 친일 미화 논란에까지 휘말렸다.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를 찾는게 편향된 교과서를 찾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교과서 공급 시장의 현실이다.

이러니 사회적 분열과 혼란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다. 교과서 채택 시기가 도래할 때마다 ‘전운’이 감도는 느낌마저 든다.

특히 재작년 하반기부터 작년 초까지 교과서 검인정 과정과 수정명령, 그리고 일선 학교에서의 교과서 채택 과정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수준이었다. 폭언과 협박이 난무하고 일부 집필진은 심각한 모욕을 당해야만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갖고 어른들이 편을 갈라 싸우는 광경은 우리 스스로에게 모멸감과 자괴감을 가져다줬다. 그런 과거를 회상해보면 정부가 국정화를 무리하게 추진해서 오늘날의 국론 분열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무색해진다.

국정화가 세계적 추세에 반하는 조치라는 데에는 일부 동의한다. OECD 국가들을 보면 국정화를 선택한 국가가 극히 소수인 것도 사실이다. 선진국일수록 검인정 혹은 자유발행제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고, 후진국이거나 전체주의 독재국가일수록 국정화를 채택하는 비율이 높다는 비판이 아프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검인정 제도에서 다시 국정화로 회귀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바로 검인정 제도에 맡겨진 우리의 역사교육이 OECD의 평균 혹은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즉, 국정화는 박근혜 대통령이 밀어붙인 것도, 보수우파가 밀어붙인 것도 아니다. 검인정제도의 실패가 자초한 극약 처방이다.

검인정 제도 내에서 좌편향적인 역사 서술이 제대로 걸러지고, 집필진들이 정부의 수정명령에 적극 협조했다면 오늘날의 국정화 추진이 과연 동력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국정화라는 표현이 다소 구시대적이고 권위적으로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절반에 해당되는 지지율을 얻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목표는 ‘올바른 역사교육’이다. 국정화든 검인정 제도든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더욱 더 균형 잡히고 종합적인 역사교육을 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 더 효과적인 것인가를 따져야 할 뿐인 것이다.

제도 자체만으로는 검인정이 국정화보다 더 우월한 제도일 수는 있으나,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함께 논하지 않는다면 공허한 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실상 문제를 일으킨다면 구제도로 돌아가는 것 또한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국정화를 선택할 경우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 편향된 역사교육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오늘날의 정치적 환경에 비추어봤을 때 기우가 아닐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언론들이 정부를 감시하고 있고, SNS는 실시간으로 정부 비판 여론을 유통시킨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사회였다면, 애초부터 국정화 반대여론이 언론에 소개조차 못됐을 것이다.

윤주진 전 한국대학생포럼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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