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명 참여한 박영선법, 당론 못 내미는 속사정은...
입력 2015.03.17 08:55
수정 2015.03.17 10:11
이중처벌로 소급입법 어려워, 상임위 아직 논의없어
"위법성 알지만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찬성"
지난달 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이학수법(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이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원내에서 잊혀가고 있다.
이학수법에는 박 의원 외에 새정치연합 의원 98명과 새누리당 의원 4명, 정의당 의원 1명 등 모두 103명이 공동발의에 참여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당 지도부는 물론, 당내 의원들의 지원도 받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학수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데에는 법안을 공동발의한 의원들마저 법안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크다. 여기에 문재인 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 전병헌 최고위원, 유승희 최고위원은 애초에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아 법안이 당론 채택 등 당 지도부의 지원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또 법조계 출신의 상당수 의원들이 이학수법의 처리 가능성을 비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 발의에 참여했던 한 의원은 “나도 이학수법에 이름을 올렸지만, 법안 자체에 문제가 많아 실제로 처리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대한 법률)처럼 위법성이 다분하다는 걸 나도 알고 다른 의원들도 알지만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찬성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법안이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되더라도 소급적용이나 이중처벌 문제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도부도 그걸 알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밀어붙이지 못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이학수법은 형법상 횡령·배임으로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이를 국고에 귀속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에는 이미 처벌받은 행위를 다시 처벌하는 이중처벌, 법안이 시행되기 전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소급입법의 문제가 있어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먼저 법원은 지난 2009년 횡령·배임 혐의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전 사장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또 기업 차원에서는 8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사회에 환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또 다시 범죄수익을 징수한다는 명목으로 재산을 추징한다면 판결이 확정된 사안을 다시 재판에 올리는 격이 돼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고, 같은 사안을 두 번 처벌하는 이중처벌이 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소급입법이다. 법안 부칙 제2조는 ‘이 법은 시행 전에 범한 특정재산범죄로부터 발생한 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을 환수하는 경우에도 적용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헌법 제13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고, 동법 2조에는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해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결과적으로 이학수법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법안이 시행되기 전 행위를 이유로 재산권이 침해돼 위헌의 소지가 있다.
한편, 이학수법은 지난달 23일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와 관련 상임위인 기획재정원회에 회부됐다. 다만 16일 현재까지 이학수법에 대한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진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