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대화? 결국 대북전단 무산시킬 심산인 듯"
입력 2015.01.08 09:43
수정 2015.01.08 09:57
"진정 대화 하려면 전제조건 걸지 말고 나와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화 의지를 피력하고 우리 정부가 이에 화답하면서 남북관계에 해빙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국내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또 다시 걸고넘어지며 우리 정부에 “관계 개선에 대한 입장을 명백히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삐라’ 살포를 묵인함은 물론 사전에 행위를 방지하려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 남북 관계가 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우리 측에 대화 재개에 대한 책임을 미루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진정으로 남북 대화 및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2013년과 이듬해인 2014년 신년사에서 남북 대화 의지를 드러낸 바 있으나, 정작 개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던 전례가 있어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북남사이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며 관계개선을 이끌 분위기를 먼저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시하면서도 “백해무익한 비방중상을 끝낼 때가 됐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남북대화 중단의 책임을 우리 측에 떠넘기는 듯 한 태도를 취했다.
앞서 2013년 신년사에서는 “남북 간의 대결상태를 해소하자”고 밝혔지만 곧바로 그해 2월에 3차 핵실험을 감행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국제정세에 악영향을 끼친 바 있다. 이어 4월에는 키리졸브 훈련에 대한 반발해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하면서 남북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이밖에 민간 영역의 활동을 남북 관계 개선의 빌미로 삼아 우리 정부로부터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하겠다’는 확답을 얻어내는 것은 물론,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환시켜 남북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내포됐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유재길 시대정신 사무처장은 7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대북전단을 문제 삼아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나서는 것을 보면 (북한이) 대화할 의지가 크지 않다고 본다”며 “대화를 하려면 전제조건을 걸지 말고 나와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대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민간단체의 활동을 구실로 삼아 전제조건으로 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어 유 사무처장은 “(북한에서도) 이번 기회에 대북전단을 확실히 무산시켜야겠다는 판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북전단이 최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어 수령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이 돌아가는 북한의 체제 특성상,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단순히 문제제기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확실히 못을 박아 대북전단을 날리지 못하게 할 심산인 듯 하다”며 “우리 정부가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에 말려들지 않고 대북전단 살포를 ‘국민의 표현의 자유’로 보고 제어하지 않는 등 지금까지 취해온 기존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본보와 통화에서 “내부 체제 안정에 있어서 위험요소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한국 정부에 단속을 요청하고 비판도 가하고 있는 것”이라며 “북한 체제의 성격 상 최고 존엄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계속해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대북전단을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이라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최고위급 인사 3명이 방한한 뒤 대화 재개가 논의되다 대북전단을 이유로 무산된 사례와 같이 이번에도 같은 전술을 구사하며 북한의 전략에 맞게 한국 정부가 움직여주길 바라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은 한국 정부에 전단 살포 중단 조치를 취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이를 남북대화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진정성 있는 태도로 받아들이겠다고 주장한다”며 “이는 모두 정부의 대남정책 전환을 유도해 내려는 북한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북한이 대북전단 때문에 지금 당장 대화의 가능성을 닫겠다고 공언한다면 북한 신년사는 그야말로 진정성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 조선중앙통신(이하 통신)은 지난 6일 ‘대결인가 관계개선인가 입장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남조선당국은 한 줌도 못 되는 산송장들의 망동을 묵인해 북남관계를 또다시 파국으로 몰아가겠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북남관계개선과 대화에 나서겠는가 하는 데서 입장을 명백히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통신은 앞서 5일 저녁 탈북자단체인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이 강원도 철원의 한 야산에서 북한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전단을 살포한 것을 두고 “남조선당국은 이번 삐라살포망동을 또 다시 묵인 조장함으로써 그들과 한 짝이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날을 세웠다.
통신은 이번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상서롭지 못한 추태’, ‘망동’, ‘인간쓰레기들의 추악한 대결망동’, ‘범죄행위’라는 등의 신랄한 표현으로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서로 뜻과 힘을 합쳐 북남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자는 동족의 정당한 주장과 호소에 대결책동으로 대답해 나선 남조선당국의 행위는 말끝마다 운운하는 ‘대화’니 ‘관계개선’이니 하는 것이 빈말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통신은 “지난해 인간쓰레기들의 삐라살포책동에 의해 우리 총정치국장일행의 인천방문을 계기로 모처럼 마련된 대화분위기가 파탄되고 북남관계가 수습할 수 없는 파국에로 치달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며 향후 사태를 주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논평이 민간단체의 전단살포 행위가 국내 매체에 의해 보도된지 하루도 지나지 않고 신속하게 발표됐다는 점에서 북한이 대북전단의 중단을 위해 남북 대화를 운운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