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해빙무드에서 대북전단살포, 무조건 나쁜가
입력 2015.01.06 18:30
수정 2015.01.06 18:37
북한인권단체 "인권과 남북문제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 있어"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새해 들어 조금씩 풀리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일 탈북자단체가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대북전단을 살포하면서 이 같은 행위가 남북관계 개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삐라 살포 행위가 남북관계 개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며 두 가지를 서로 다른 차원에서 분리해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다뤄져야 하는 것인 반면, 남북 대화는 국가 정책적 사안으로서 통일문제와 직접적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새해 첫날 조선중앙TV로 방영된 신년사 육성 연설에서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대화와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최고위급 회담'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곧바로 브리핑을 열고 “우리 정부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 간 대화가 개최되길 기대한다”고 화답하면서 국내외 언론은 물론 일부 대북전문가들은 ‘올해 남북관계가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해빙무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 대북지원 민간단체가 정부의 승인을 얻어 북한에 20t에 달하는 고구마를 보내는 등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가공되지 않은 생곡물이 북한에 지원돼 5·24 조치로 금지됐던 대규모 식량지원이 재개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며 인도적 지원에도 물꼬가 트이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5일 오후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이 경기 연천의 한 야산에서 북한의 정권세습 등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대북전단 60만장을 풍선에 매달아 날려 보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새해를 기점으로 조성된 남북 대화 분위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대북전단살포 행위에 자체에 대한 비난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현재 남북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키리졸브 및 독수리 연습 등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함께 대북전단을 포함한 상호비방 중지를 내걸고 있어 급속한 남북관계 개선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북한인권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대북전단과 남북대화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광백 국민통일방송 대표는 6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북한 주민에게 진실을 전하는 행동이 남북 간의 정치적 분위기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필요는 없다”며 “인권단체들은 그와 관계없이 꾸준히 인권 차원에서 활동을 해나가야 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의 인권활동을 존중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식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보통 (남북관계) 분위기가 전환될 때 이러한 논란이 중요하게 부각되지만 항상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재차 인권문제와 남북관계 개선 문제를 별개의 것으로 분리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북한 당국이 현재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대북전단 문제를 이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등 국내인권 활동이나 통일 운동을 제어하려고 하는 순간 오히려 북한 당국에 끌려가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강신삼 열린북한방송 대표 역시 본보와의 통화에서 “대북전단은 북한 인권문제이고 남북 간 관계는 사실 통일과 관련한 문제”라며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이를 분리해서 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인권문제는 사실 대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투쟁의 문제라고 할 수 있고, 통일 문제는 투쟁보다는 화해와 협력의 문제”라면서 “한편으로는 남북 간 화해 협력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 또 다른 방향에서는 인권문제를 꾸준히 거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실제 과거 서독이 동독에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면서도 정치범 석방 등 동독의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등 사안별로 분리된 접근 방식을 취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대표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남남갈등을 일으킬만한 소재는 아니라고 본다”며 “여론에 밀려 행위를 자제할 수는 있겠지만, 정부가 나서서 행위를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고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법원은 6일 대북전단 풍선 날리기 활동 방해로 입은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해 50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며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본부 대북풍선단장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이 단장은 앞서 지난해 6월 소장을 제출하며 경찰과 군이 전단 살포 정보를 사전에 지역 주민에게 알려 항의를 받고 쫓겨나게 된 사례 등을 제시,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인권 실현을 위한 대북풍선 날리기는 표현의 자유이므로 국가가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의정부지법 민사9단독 김주완 판사는 판결문에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활동은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만 휴전선 인근 지역 주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대북전단 살포 행위에 대한 정부의 제재 조치가 이뤄질 수 있어 앞서 한 차례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안전’을 두고 불거진 논란이 또 다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