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호미로 막을걸 가래로도 못막았다
입력 2014.12.02 11:27
수정 2014.12.02 11:35
조응천 vs 정윤회 언론 통해 진실공방 혼란 가중
사건의 한축인 김기춘 실장은 침묵만 '혼란 일조'
‘정윤회씨 국정 개입’ 보고서 파문 이후 관련 당사자들이 연 이어 입을 열면서 청와대를 둘러싼 알력 다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간 정치권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수많은 설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자고일어나면 한가지씩 터져나오는 형국이다.
특히 이번 파문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비선라인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 씨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여전히 연락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반면 정 씨는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있다고 반박하며 새로운 진실게임을 예고했다.
2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정씨가 올 4월 청와대의 ‘문고리 권력 3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이 비서관과 연락을 취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4월 10일~11일 이틀에 걸쳐 청와대 공용 휴대폰을 정 씨로부터 연락이 왔지만 모르는 번호였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가 왔지만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이 비서관이 연락을 걸어왔다. 그는 조 전 비서관에게 “(정 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고 했고, 조 전 비서관은 “좀 생각해보고요”라고 답했지만 정 씨와 통화를 하지는 않았다.
이후 조 전 비서관은 4월 15일 홍경식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며 사표를 제출하란 통보를 받았고, 이후 사퇴를 했다.
조 전 비서관은 “정씨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과 내 거취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속단할 순 없다”면서도 “다만 정씨와 절연한 것처럼 이야기해온 이 비서관이 정씨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보고 ‘도대체 이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정 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한두번도 아니고 민정수석실에서 계속 이런다면 나도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오히려 이번 사건의 배후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지목했다.
정 씨는 특히 논란이 된 문건 작성의 배후가 민정수석실이라는 증거로 해당 문건을 작성한 박모 경정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정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29일과 30일 박 경정과의 통화에서 “사실대로 이야기해라. 이젠 다 알려지지 않았는가”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박 경정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타이핑한 죄밖에 없다. 그것을 밝히려면 윗선에서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즉, 청와대에서 논란이 된 문건 자체가 민정수석실이 박 경정을 통해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비선라인 실세’ 논란은 사실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국기문란’ 청와대 문서 유출, 주범은 박 경정? 아니면 제3자?
박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한 문건 유출을 두고도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당초에는 해당 문건을 작성한 박 경정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당사자가 극구 부인하고 나선 가운데 일각에서는 제3자가 유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현직 청와대 인사들과 민정수석실 측에서는 박 경정을 유출자로 보고 있다. 그가 지난 2월 경찰로 복귀하면서 문건을 들고 나갔고, 이후 경찰서 과장으로 사실상 좌천된 것에 불만을 품고 청와대 핵심 실세들을 견제하기 위해 언론에 문건을 유출시켰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 경정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찰 복귀 직전 누군가 내 서랍에 있던 서류들을 복사한 것으로 안다. 청와대도 내가 유출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제3의 유출자가 있다는 주장이며 실제 이를 뒷받침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날 ‘중앙일보’에 따르면 박근혜정부 초기 청와대에 근무했던 일부 인사들은 박 경정이 아닌 제3의 청와대 내부 인사가 해당 문건을 복사해 유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내용이 지난 5월 말~6월 초 이미 민정수석실에 보고됐다고 강조했다.
또 당시 문건을 보관 중인 서랍의 열쇠가 책상 밑에 보관돼 있다는 것은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문건을 복사한 제3의 청와대 인사가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사건 열쇠 쥔 김기춘, 총잭임자이지만 침묵만...
이처럼 문건 유출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면서 새로운 의혹이 재생산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문건 내용의 핵심 당사자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서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모든 업무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총책임자인 비서실장을 통하며, 이에 따라 비서실장은 청와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더구나 논란이 된 문건은 ‘정윤회와 3인방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사퇴시키려고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김 비서실장은 당사자로서 당연히 파악하고 있었어야 할 사안이다. 실제 파악을 하고 있었다면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적절한 대책을 세워서 사전 차단을 했어야 했고, 만약 사전에 파악을 하지 못했었다고 하면 그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진실 규명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그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당사자인 김 비서실장이 자신을 둘러싼 이번 논란과 관련해 사실관계가 어떻다는 것을 빨리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사퇴설이 나도는 시점부터 지금껏 당사지인 김 비서실장이 관망하는듯한 모습을 보이는게 설을 키운 꼴이 됐다. 대통령이 나서서 호통을 치는 모습보다는 '찌라시'는 사실이 아니라고 청와대내에서 권력다툼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김 비서실장이 나섰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반면 김미현 알앤서치 소장은 “지금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에서 김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면 모양새가 우습게 된다”면서 “김 비서실장이 지금 나서면 야당에서는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라고 공세를 펼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