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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다퉈 아폴로에 바친 보물들의 숨막히는 경연장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kipeceo@gmail.com)
입력 2014.08.24 10:08
수정 2014.08.24 10:11

<박경귀의 ad Greece 23>예술 작품에 투영된 자연, 신과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편집자 주 >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귀중한 선물로 신을 기쁘게 하면 더 많은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인간에게 주어지는 행운과 행복이 신에 대한 봉헌 재물의 가치에 비례할까? 막대한 십일조나 시주, 복채가 행운과 행복을 더 많이 담보해줄까? 인간사를 관조하며 통할하는 누군가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보물이 그에게도 보물일 수는 없을 터. 보물은 인간 사회에서만 소중할 뿐이다. 그렇다면 봉헌의 재물과 행운과 행복은 무관함이 틀림없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봉헌자인 인간의 마음은 편치 않은 가보다. 기복(祈福)을 위해 더 많은, 더 소중한 재물을 바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생기고, 또 이를 더욱 부추기는 종교단체 또한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시프노스의 화려한 보물창고

신탁의 도시 델포이에도 아폴론 신을 경배하는 인간들의 봉헌 경쟁이 치열했다. 델포이의 아폴론 성역에 세워진 숱한 보물창고들은 그리스 지중해 곳곳에 산재한 도시국가들의 재난의 회피와 행복을 기원하는 정성이 담겼다. 보물창고와 봉헌 재물들은 그 나라의 번영의 정도를 대변했다.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 반도의 끝자락에서 점점이 이어진 키클라데스 제도(諸島) 가운데 작은 섬나라인 시프노스(Siphnos) 역시 최고의 화려한 보물창고와 보물을 델포이에 봉헌하며 자신들의 번영을 유지할 방도에 대한 신탁을 구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이렇게 전한다.

“당시 번영의 절정에 이른 시프노스는 섬사람들 중에서 가장 부유했다. 그 섬에는 금광과 은광이 있어, 그 수입의 10분의 1로도 델포이에, 그곳의 가장 훌륭한 보물창고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보물창고를 지을 수 있었다. 그들은 또 해마다 광산의 수입을 저들끼리 나누어가졌다. 그들은 보물창고를 지었을 때 자신들의 행운이 오래 지속되겠는지 신탁에 물었다. 그러자 피티아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시프노스의 시청이 하얘지고 장터의 이마마저 그렇게 되면,
그때는 나무로 된 매복처와 붉은 전령을 피하라고 일러줄
선견지명을 가진 자가 그대들에게 필요하리라.“(Ⅲ 57-58)


시프노스인들은 피티아가 전해 준 신탁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었다. “나무로 된 매복처와 붉은 전령을 피하라”는 신탁은 붉은 색을 칠한 전선(戰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시프노스인들은 이런 위험의 예고를 알아차리지 못해 엄청난 보물의 봉헌에도 불구하고 굴욕과 쇠락을 겪었다. 소아시아 쪽에 가까이 위치한 섬 사모스인들이 침입하여 시프노스인들에게 10탈란톤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였다가 거절당하자 시프노스의 경작지를 유린하고 시프노스인들을 고립시킨 후 100탈란톤의 몸값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방호할 군대를 육성하거나 아니면 든든한 동맹국을 활용했다면 그런 굴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 같다. 거액의 차관을 준 후 동맹국의 도움을 받아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견지명’을 가진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엄청난 보물의 봉헌에도 불구하고 번영을 유지하지 못했던 셈이다.

현재 델포이 성역에 시프노스의 보물창고는 주춧돌 이외엔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복원도를 보면 당시의 화려함을 가늠할 수 있다. 시프노스의 보물창고는 주 기둥이 여인 조각상으로 묘사한 카리아티드(caryatid) 양식을 취하고 있고 메토프와 박공에도 부조를 빼곡히 새겼다. 시프노스인들(Siphnians)이 얼마나 부유했었는지 말해주는 듯하다.

이 보고(寶庫)는 BC 525년에 건립되었다. 그렇다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BC 421~BC 406년경에 건축된 에렉테이온 신전의 아름다운 카리아티드의 전조(前兆)를 보여준 것 셈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프노스의 보물창고를 가득 채웠던 보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에게 해의 섬인 시프노스(Siphnos)의 보고(寶庫) 복원 추정도, 델포이 성역의 보물창고 중 가장 화려함을 자랑했다고 한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를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카리아티드 기둥,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에렉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 기둥, 아테네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를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카리아티드 기둥 두상 부분,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를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카리아티드 기둥 두상 부분, 지붕의 하중을 받칠 수 있도록 목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긴 머리를 목 뒤로 넘기고 목과 뒷머리의 연결 부위를 두텁게 처리한 것에 주목하라.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를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카리아티드의 몸체 부분,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신화로 장식한 시키온의 보물창고

시키온(Sicyon)의 보물창고도 귀한 유물들을 많이 남긴 곳이다. 시키온은 코린토스 서쪽에 위치한 고대 도시다. 시키니온(Sikyonian) 보물창고는 원형신전의 형식으로 지어져 모노프테로스(monopteros)라 불린다. 이곳의 메토프 부조는 다양한 신화의 소재를 담고 있는 매우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먼저 백조로 변한 제우스가 레다와 사랑을 나눠 태어난 쌍둥이 카스토르(Castor)와 폴뤼데우케스(Polydeukes)의 부조가 있다. 이 형제는 매우 용맹하고 우애가 좋기로 소문났다. 테세우스와 그의 친구 페이리토스가 스파르타에서 이들의 누이 헬레네를 납치해 갔을 때 그녀를 구해낸 것도 이들이었다. 이 쌍둥이 형제는 ‘제우스의 아들들‘이라는 뜻에서 ’디오스쿠리(Dioscuri)‘라 불렸다. 이들의 부조가 시키니온 보물창고의 메토프에 새겨진 것을 보면, 이들 형제의 명성이 스파르타를 넘어 펠로폰네소스 반도 전역에서 자자했던 모양이다.

카스토르(Castor)와 폴뤼데우케스(Polydeukes)의 부조,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또 한편의 부조에 디오스쿠리가 그의 사촌, 그리고 아파레우스(Aphareus) 두 아들과 함께 아르카디아(Arcadia)를 습격하여 노획한 황소들을 창을 든 채 몰고 가고 있는 모습이 새겨졌다. 여러 마리의 황소가 몸통은 가는 방향을 향한 채 머리가 정면을 향해 겹쳐 보이도록 표현된 점이 독특하다.

디오스쿠리가 노획한 황소들을 창을 든 채 몰고 가고 있는 모습이 담긴 부조,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이 이외에 시키니온 보물창고의 메토프에는 제우스에 의해 납치되는 에우로페가 새겨져 있었다. 또 가축과 사람을 마구 해친 난폭한 야수로 유명했던 칼뤼돈(Calydon)의 멧돼지도 있다. 이 멧돼지를 잡기 위해 그리스 전역에서 수많은 용사들이 모여들었고, 결국 여전사 아탈란테와 멜레아그로스에 의해 죽게 된다.

제우스가 황소로 변신하여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모습을 새긴 부조,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칼뤼돈(Calydon)의 멧돼지, 가축과 사람을 마구 해친 난폭한 야수였다. 이 멧돼지를 잡기 위해 그리스 전역에서 수많은 용사들이 모여들었다. 결국 여전사 아탈란테와 멜레아그로스에 의해 죽게 된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플릭소스(Phrixos)가 콜키스까지 타고 간 황금양으로 추정되는 부조도 있다. 플릭소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황금양을 제우스신에게 바치고 양피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에게 바쳤다. 펠리아스가 이아손에게 가져올 것을 명령한 황금양피가 바로 이것이다. 이 황금양피를 구하기 위한 이이손을 비롯한 그리스 영웅들의 모험담은 헬레니즘 시대에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Apollonios Rhodios, BC 295?~ BC 215?)가 지은 『아르고 호 이야기(Argonautika)』에 잘 묘사되어 있다.

플릭소스(Phrixos)가 콜키스까지 타고 간 황금양으로 추정되는 부조다. 델포이 아폴론 성역의 시키니온(Sikyonian) 보물창고의 부조로 남아있다. 플릭소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황금양을 제우스신에게 바치고 양피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에게 바쳤다. 펠리아스가 이아손에게 가져올 것을 명령한 황금양피가 바로 이것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신전의 예술작품들

델포이 성역의 주 성전(聖殿)은 아폴론 신전이다. 하지만 가장 심하게 파괴된 곳 역시 이곳이다. 38개의 웅장한 도리아식 기둥이 받들던 신전의 위용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거대한 6개 기둥의 일부분만이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게 한다. 그나마 아폴론 신전의 용마루에 조상(彫像)되었던 아크로테리온(acroterion)이 남았다.

상의로 히마티온(himation)을 걸쳤고 상체의 양 날개는 소실되었다. 다리에 날개가 달린 점이 특이하다. 오른발은 소실되었다. 역시 날개가 달려 있었을 것이다. 승리의 여신인 니케를 상징하는 여신 조각 중 하체에 날개가 달린 특이한 유형이다. BC 515~505년 작품으로 추정된다.

신탁의 성지 아폴론 신전의 용마루에 조상(彫像)된 니케 여신상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항상 외적과 싸워 이기고 나라를 보존하는 것이었을 듯싶다. 이들의 비원(悲願)에 응답하기 위해 승리의 여신을 아폴론 신전의 정면 용머리에 세우지 않았을까.

아폴론 신전의 유적, 38개의 기둥 중 6개의 일부와 겹겹이 쌓인 거대한 바닥 돌만 남았다. ⓒ박경귀

아폴론 신전의 복원 추정도 및 평면도, 오른쪽은 신전의 용머리를 장식하던 아크로테리온(acroterion)이다. 승리의 여신 니케를 상징하는 듯하다. ⓒ박경귀

아폴론 신전의 용마루에 조상(彫像)되었던 아크로테리온(acroterion)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신전의 동쪽 페디먼트에는 중앙에 사두(四頭) 마차가 청년들에 이끌리고 있는 모습과 좌우에 사자가 야수를 물어 물리치는 형상이 부조되어 있었다. 이 부조의 주제는 아폴론이 델로스에서 아테네를 거쳐 델로스에 입성하게 이야기를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전거(典據)는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에우메니데스'(Eumenides)다.

“포이보스(아폴론)께서는 델로스의 못과 바위섬을 떠나, 배들이
항해하는 팔라스의 해안에 오르신 다음 여기 이 나라와
파르나소스 산에 있는 당신의 거처로 오셨나이다.
그리하여 헤파이스토스의 자손들이 그분을 호송하고
그분을 경배했으니, 그들은 그분을 위해 길을 내며
경작할 수 없던 땅을 경작할 수 있게 해놓았지요.
그분께서 오셨을 때 백성들과 이 나라의 키잡이인
델포스(Delphos) 왕은 그분을 우러러 받들었지요.“


아폴론 신전의 동쪽 페디먼트의 맨 왼쪽 부조. 사자가 야수를 물어 물리치는 장면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신전의 동쪽 페디먼트의 왼쪽 중간의 부조.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신전의 동쪽 페디먼트의 중앙 부분 부조. 네 마리의 말상(像)이 있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신전의 동쪽 페디먼트의 맨 오른쪽 부조. 사자가 야수를 물어 물리치는 장면이 왼쪽과 대칭적으로 묘사되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신전의 서쪽 페디먼트의 중앙에서 왼쪽에 위치한 아테나 여신상,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아테나 여신상과 방향만 반대인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아테나 여신상,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서쪽 페디먼트에 부조된 아테나 여신과 방향만 반대일 뿐 동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테네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박경귀

또 델포이 성역에는 아폴론 신전 이외에 조금 아래 떨어진 곳에 아테나 신전과 톨로스(Thilos)가 있는 마르마리아(Marmaria)라 불리는 아테나 프로나이아(Pronaia) 성역이 있다. 아테나 신전에도 아폴론 신전의 용마루에 조상(彫像)되었던 니케 상처럼 아크로테리온(acroterion)이 있었다. 두 개의 아크로테리온이 남아 있는데 역시 달리는 승리의 여신 니케 상(像)을 조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휘날리는 옷 주름이 역동적인 작품들이다.

아폴론 신전에서 아테네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테나 신전의 용마루에 조상(彫像)되었던 아크로테리온(acroterion)이다. 니케 상으로 추정된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신전에서 아테네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테나 신전의 용마루에 조상(彫像)되었던 아크로테리온(acroterion)이다. 역시 니케 상으로 추정된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성역에 봉헌된 신과 인간의 표정들

아폴론 성역에 봉헌된 예술작품에는 신과 당대의 영웅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도 보인다. 연회용 술잔인 킬릭스 접시(Attic white-ground kylix)에 그려진 아폴론의 모습은 음악의 신인 그가 아폴론 성역의 주인임을 확인시켜 준다. 잠자는 에로스의 조각도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연회용 술잔인 키릭스 접시(Attic white-ground kylix)에 그려진 아폴론의 모습, X-자형의 접는 식의 의자인 디프로스 오크라디아스(Diphros Okladias)에 앉아 오른손으론 헌주를, 왼손에는 키타라(kithara)를 잡고 있다. 앞에는 아폴론의 신조(神鳥)인 까마귀가 앉아 있다. 이 그림은 화가 피스토크세노스(Pistoxenos)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사진 Tomisti

잠자는 에로스의 모습,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성역에 봉헌된 조각 작품 중에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있다. 수려한 외모와 우울함이 절묘하게 표현된 얼굴 표정 때문에 눈에 확 띄는 걸작이다. 작품 소개에는 티투스 퀸투스 플라미니우스(Titus Quinctius Flamininus) 상이라 명기되어 있다. 그는 로마의 장군이자 집정관으로 BC 197년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를 물리치고, 코린트에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자치를 선언했던 인물이다.

예술사가들은 동 시대 동전에 묘사된 플라미니우스의 상과 비교하여 이 조각상을 플라미니우스라고 확인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사람의 조각 상이라는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마의 5현제(賢帝) 중의 한 사람인 하드리아누스(Publius Aelius Hadrianus, 76~138)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미소년 안티노우스(Antinoos) 상이라는 것이다. 안티노우스는 황제를 수행하여 이집트를 순행하던 중 나일 강에 빠져 익사했다. 일설에는 그가 황제의 불행을 막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아무튼 하드리아누스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가 죽은 곳 인근에 안티노폴리스라는 도시를 세우고, 조각 상을 세우는 등 신격화했다고 한다. 델포이 성역에 그의 조각 상을 봉헌한 것도 그가 로마에 공헌한 것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이 작품 해설판에는 ‘우울한 로마인(The melancholy Roman)'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물론 우울함의 원인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늘진 눈, 굳게 다문 입술, 약간 기울인 시선과 머리 형상에서 전체적으로 뭔가 모를 슬픔과 우수가 뚝뚝 묻어나는 듯하다. 내가 보기엔 미소년 안티노우스 상에 가까워 보이지만, 조각 상의 주인공이 플라미니우스이든 안티노우스이든, 또는 로마인이든 그리스인이든 간에 작품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인간을 표현한 초상 조각 작품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조상(造像)한 조각가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욱 아쉽다. 그는 필시 프락시탈레스(Praxiteles)와 같은 천재 조각가의 재능을 물려받았음에 틀림없다.

‘우울한 로마인(The melancholy Roman)' 조각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우울한 로마인(The melancholy Roman)' 조각상의 세부,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우울한 로마인(The melancholy Roman)' 옆에는 천진한 미소를 띤 소녀상도 있다. BC 3세기 초 작품이다. 입술의 양 옆의 오목한 모양과 볼과 입가에 잔잔히 번지는 기쁨을 머금은 미소가 일품이다. 보는 이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돌게 한다. 반면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길게 기른 철학자 상은 진지한 표정이 대조적이다.

미소짓는 소녀 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미소짓는 소녀 상 세부,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철학자 가족상 가운데 철학자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성역에 봉헌된 건축 장식과 조각 작품, 도기 회화와 공예품 등 다양한 보물들은 국가의 안녕과 번영, 그리고 개인의 행복을 희구하는 기복(祈福)의 예물이자, 신의 가호에 대한 답례품들이다. 델포이 성역은 아폴론의 예지의 신탁을 구하는 참배객이 줄을 이으면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예술작품과 귀중한 보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영험한 신탁은 델포이의 이러한 번영은 더욱 지속시켰다. 하지만 델포이의 번영에 대한 질시, 신성에 대한 도전은 물론 무진장한 보물의 약탈을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 또한 잉태하고 있었다. (다음 회에는 델포이의 보호자와 약탈자에 대해 소개합니다.)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박경귀 기자 (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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