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담배연기로 피어오른 이치로 시계추
입력 2013.02.1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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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신인 엄격한 자기혁신도 필요
이치로 미국 초기 타격폼까지 대수술
류현진
‘괴물’ 류현진(26·LA 다저스)의 담배가 갑자기 도마에 올랐다.
한화 시절에도 류현진 담배는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담배를 피고도 '괴물'로 자리 잡았던 그였기에 담배 그 자체가 논란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어찌 보면 착실히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던 그로선 황당할 수도 있다. 류현진은 사실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다. 9회 완투하고도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체력을 지닌 몇 안 되는 내구성을 가진 투수다. MLB닷컴의 켄 거닉 기자는 그 사실은 모른다. 그래서 러닝에서 뒤처진 류현진을 보고 담배와 러닝을 연관시켜 체력에 우려를 표한 것.
이에 류현진은 "뛰는 체력과 공 던지는 체력은 다르다"고 재치 있게 받아쳤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류현진 다운 응수였다. 아무리 큰 경기에서도 떨지 않고 자기 공을 던질 수 있는 배짱이 이런 근거 있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류현진은 특유의 넉살로 "담배 피는 게 죄냐"라고 ‘농반진반’ 덧붙였다. 이것은 조금 문제가 달라진다. 물론 흡연은 기호식품이지 죄는 아니다. 한화에선 아무런 흡연에 대한 제재를 받지 않았던 그였기에 이런 생각을 갖는 것도 전혀 잘못된 것도 아니다.
문제는 흡연 자체가 아니라 자기 관리다. LA 다저스는 류현진을 영입하기 위해 약 6200만 달러를 투자한 투자자다. 투자자 입장에선 검증받지 않은 류현진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거액 투자 상품에 대한 체크와 피드백은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국내와는 달리 사소한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의해 비화될 수 있다. 여태껏 국내 언론은 류현진에게 우호적이었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류현진을 괴물로 보지 않는다. 단지 가능성 있는 신인으로 여길 뿐이다.
작년 류현진 팀 선배 박찬호는 LA 다저스 선배이기도 하다. 박찬호는 햄버거 문제로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으로부터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마이너리그 시절 박찬호가 LA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들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것을 듣고 박찬호에게 질책을 한 것이다. 당시 라소다 전 감독의 지적은 햄버거 하나가 아니라 메이저리거의 품격이었다. 팬들의 동경을 받는 메이저리거 다운 품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어찌 보면 한국보다 규율이 더 엄격하다고 볼 수 있다.
메이저리거는 메이저리거 다운 사생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구단은 품위유지비를 지급하고 선수들은 그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예컨대 원정 시 정장과 구두 착용 의무조항 등이 그것이다. 박찬호가 햄버거를 사들고 LA 시내를 활보한 것도 품위 유지와 관련된 것이다. 라소다 감독의 쓴소리 이후 박찬호는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국내에선 별 다른 문제가 안됐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담배가 논란이 된다면 담배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게 바로 자기 관리의 잣대로 둔갑할 수 있고 메이저리그를 대하는 자세로 확대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재' 이치로는 오릭스 시절 전혀 문제없던 진자타법(일명 시계추 타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시애틀로 건너갔다. 자신의 배트 스피드를 맹신하지 않고 메이저리그 특급투수의 광속구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반응이 더딘 시계추를 자신의 타격 동작에서 떼 낸 것이다. 이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신인의 자세다. 일본 최고 타자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신인의 도전 자세가 바로 이치로가 버린 시계추에서 드러났다. 그 후 이치로는 '전설' 조지 시슬러를 넘어섰다.
류현진은 지금 담배 논란이 트집 잡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전하는 신인은 엄격한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어쩌면, 류현진이 낙오한 5세트 째 러닝의 위력이 9회말 완봉을 앞둔 마지막 1구에서 나올 수도 있고, 10년 뒤 한 시즌을 더 뛸 수 있는 체력에서 터질 수도 있다.
기초 체력을 중시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먼 미래에 대한 선투자, 즉 보험이다. 담배와 러닝은 류현진이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투수인지를 체크할 현재의 수단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담배 논란의 종지부는 결국엔 성적이다. 올해 성적이 좋으면 담배는 국내처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실패할 경우엔 흡연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치로는 일본에서도 문제없던 진자타법을 버리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그리고 최고가 됐다. 한화의 괴물에 안주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지금 류현진에겐 시계추를 털어낸 이치로의 비장함이 사실 보이진 않는다. 특유의 자신감과 여유도 좋지만, 신인왕이 아니라 사이영상으로 눈높이를 맞출 수는 없을까. 국내 팬들은 메이저리그 최고에 도전하는, 괴물의 과감한 자기 혁신이 보고 싶다. 류현진이라면 충분히 그럴 잠재력이 있는 한국 대표 투수이기에 기대도 더 클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