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 30-60’ 전설이 된 KIA 이종범
입력 2012.04.0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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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달리고 막고’ 유일무이 야구천재
은퇴 압박-치열한 경쟁 뒤로 하고 작별
이종범은 한국야구사에서 진정한 ‘5툴 플레이어’라는 찬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였다.
야구에는 ‘5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라는 용어가 있다.
공을 정확히 맞추는 콘택트 능력, 장타력, 안정된 수비, 정확한 송구 능력, 빠르고 재치 있는 주루능력 등을 모두 겸비한 선수를 일컫는다. 보통 이중 1~2가지만 잘해도 충분히 뛰어난 프로선수가 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잘하는 선수는 흔치않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한국야구사에서 진정한 ‘5툴 플레이어’라는 찬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였다. 어중간하게 ‘이것도 좀 하고, 이것도 나쁘지 않은’ 정도 수준의 선수는 많지만 이종범은 차원이 달랐다. 전성기의 이종범은 그야말로 잘 때리고 잘 막고 잘 던지고 잘 달리는 만능선수의 표상이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기억하는 1994년은 이종범 야구인생의 정점이자, 한국야구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시즌이었다. 이종범은 타율 0.393, 196안타 84도루 19홈런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MVP를 차지했다.
특히 타격기록은 프로 원년 백인천(0.412) 이후 역대 2위의 대기록이자 꿈의 타율로 불리는 4할에 가장 근접한 기록이기도 했다. 백인천이 당시 72경기를 출전하는데 그쳤고, 아직 한국프로야구나 투수들의 수준이 세미프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기록의 가치는 이종범 쪽이 더 높다.
이종범의 전매특허인 도루는 1994년 단일시즌 최다기록을 포함해 총 4차례나 타이틀을 차지했다. 득점 1위는 5차례, 최다안타왕은 1회 수상했다. 1994년 못지않은 활약을 보였던 1997년에는 30홈런-64도루로 프로야구 최초이자 마지막 30-60클럽을 개척했다. 보통 20-20만 되도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인정받는 것을 감안하면, 이종범의 기록은 그야말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기록이었다.
이종범은 우승청부사이자 곧 타이거즈의 역사 그 자체였다. 이종범이 한창 활약하던 시절 해태는 세 번(1993, 1996, 1997)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팀명이 해태로 KIA로 바뀌고 한동안 부침의 시기를 거쳐 2009년 12년 만에 한국야구사 최초의 V10을 달성하는 그 순간에도 이종범이 그 자리에 있었다.
비록 더 이상 팀의 주전은 아니었지만 후배들을 이끄는 정신적 지주이자 기둥으로 건재하던 이종범의 모습과 우승 확정 이후 후배들을 부둥켜안고 뜨거운 남자의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많은 팬들에게 특별한 감회를 안겼다. 이종범은 해태 시절부터 KIA에 이르기까지, 타이거즈의 역사와 전통을 환기시켜주는 상징적 존재였다.
모든 선수들이 그러하듯, 이종범조차도 세월의 벽은 거부할 수 없었다. 많은 선수들이 전성기를 지나 하향세로 접어든다. 그러면서 달라진 위상이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 2006년과 2007년 연이어 부진한 성적을 거둔 이후, 이종범은 한동안 은퇴압박에 시달리기도 했고 이후에도 나이에 대한 부담은 이종범의 야구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이종범은 과거의 위상에 얽매이기보다는 야구 그 자체를 택했다. 이종범이 사실상 매년 계속된 은퇴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고 선수생활을 고집했던 것은 돈이나 명예에 대한 욕구 때문이 아니었다. 이종범은 이에 대해 틈날 때마다 강조했다.
“나이든 선수는 명예롭게 퇴진해야한다는 정서가 있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은퇴가 왜 명예로운가?”
어차피 아무리 뛰어난 스타라도 선수의 전성기는 언젠가 끝난다. 하지만 선수라면 끝까지 그라운드에서 뛰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계속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다. 주전이 아니라도 좋다. 단지 야구를 하고 싶을 뿐이다”는 그의 야구철학과 인생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2012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종범은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언젠가 한번은 다가올 일이었지만 그가 원했던 타이밍이나 결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종범은 쿨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비록 선수로서의 삶은 마감하더라도 그는 영원히 야구를 떠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팬들에게도 이별이 아닌 잠시 동안의 공백일 뿐이다.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든 그는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올 것이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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